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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국배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카카오(035720)나 네이버(035420) 같은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기업결합(M&A) 심사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 등이 담긴 플랫폼 독과점 대책을 내놓자, 인터넷 플랫폼 업계가 불안감에 휩싸였다. 플랫폼 기업의 주요 성장 전략인 M&A에 제동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자칫 구글·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와 경쟁 중인 우리 기업과 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플랫폼 기업의 리스크가 커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심사 지연으로 인한 사업 차질 불보듯
지난 2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플랫폼 독과점에 특화된 제도 개선 및 법 집행 강화 방안’의 주요 대책은 △플랫폼 독과점 심사지침 연내 제정 △무분별한 사업 확장 차단을 위한 M&A 심사 기준 개정 등이다. 공정위가 이전부터 추진해온 사안이지만, 카카오 사태를 계기로 가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공정위가 플랫폼 기업용 M&A 기준을 세우는 건 ‘문어발식 확장’을 막자는 취지지만, 전문가들은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공정위가 합병 자체를 막지 않더라도 심사를 지나치게 오래 끌고 가면 해당 기업은 사업 계획에 차질을 빚거나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탓이다. ‘속도전’이 필요한 IT 플랫폼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 2015년 12월 SK텔레콤이 케이블TV업체(유료방송 플랫폼)인 CJ헬로비전을 인수하겠다면서 공정위에 M&A 승인을 요청했지만 5개월이 지나도록 결론을 내리지 않아 뒷말이 무성했다. 당시 ‘함흥차사’에 빗대 ‘세종차사’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홍대식 서강대 교수는 “경쟁 영향을 검토한다고 해 반드시 금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플랫폼 기업이 사업 다각화를 위해 다른 분야 기업을 인수할 때 공정위의 심층 심사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져 인수 기간이 더 오래 걸리고 리스크가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숨죽인 업계…아마존 등 미 빅테크는 작년 M&A 최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공정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카카오가 2017년 8월부터 현재까지 M&A를 신고한 62개 회사 중 53곳이 간이심사를 거쳤다. 이에 대해 김상훈 의원은 “경쟁제한성 심사 없이 신고 사실만 판단해 문어발 확장을 열어줬다”고 비판했지만, 업계에선 “플랫폼 기업의 M&A에 제동이 걸리면 자칫 글로벌 기업의 지위만 공고하게 만드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걱정도 한다.
가뜩이나 카카오 사태 이후 플랫폼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규제 논의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면서 인터넷 플랫폼 업계는 숨을 죽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규제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충분한 논의 없이 분위기에 휩쓸려 과도한 규제가 만들어질까 걱정”이라고 했다.
빅테크 규제 논의는 미국, 유럽 등에서도 이뤄지고 있긴 하지만,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공격적인 M&A로 성장해온 것도 사실이다. 금융 정보 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지난해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의 M&A 건수(비공개 M&A 제외)는 2011년 이후 가장 많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가장 많은 56건의 M&A를 진행했으며, 아마존과 알파벳의 M&A 건수도 각각 29건, 22건이나 됐다. 김 의원실 자료를 보면, 네이버와 카카오의 지난해 M&A 건수는 각각 5건, 22건이었다.
공정위가 하려는 규제가 그간의 정부 기조와 상반된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 정부는 ‘혁신 촉진 M&A의 신속한 심사’를 국정과제로 택했다. 때문에 업계에선 플랫폼 기업의 M&A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번 계획대로라면 오히려 플랫폼 기업 간 M&A 심사의 문턱이 높아진다. 스타트업(초기 벤처)업계에선 “스타트업의 ‘엑시트’ 통로가 좁아질 수 있다”는 반응도 있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무료 서비스로 가입자 수를 늘린 후 사업 모델을 접목해 M&A를 통해 성장하는 게 플랫폼의 속성이자 혁신 기업의 성장 모델”이라며 “지침대로라면 누구도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