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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예견됐던 알뜰주유소 유찰

피용익 기자I 2011.11.16 13:21:35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올해 초 이명박 대통령의 `기름값이 묘하다` 발언 이후 정부는 초지일관 정유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한 해가 다 가도록 성과는 없다. 서울 지역 휘발유 가격은 리터(ℓ)당 2000원을 웃도는 사상최고 수준이다.

정부가 최근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알뜰주유소 계획 역시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지난 15일 벌어진 석유 공급업체 입찰은 정유사들이 정부의 기대보다 높은 가격을 써내 유찰됐다. 정유업계가 알뜰주유소 정책을 탐탁치 않게 여겨왔다는 점에서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다.

정부는 재입찰을 통해 가격 차이를 좁혀가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유사들이 얼마나 기대에 부합할 지는 의문이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재입찰에 참여는 하겠지만, 공급가격을 상식 밖으로 낮게 써낼 기업은 없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필요하다면 일본에서 휘발유를 수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일본 석유는 수출 물량이 적고, 환경성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이미 백지화되다시피한 얘기를 또 꺼낸 것이다. 일본산 휘발유 수출가격은 ℓ당 9원 정도 저렴하지만, 운송비 등을 고려하면 이 정도로는 기름값 인하 효과를 거두기도 힘들다.

정유사들의 석유 공급가격은 시장에서 정해진다. 국제 유가와 환율, 수급 요인 등이 가격을 결정한다. 공급가격을 낮추라는 것은 손해를 보면서 팔라는 얘기나 다름이 없다. 실제로 지난 4~7월 정유사들이 기름값을 ℓ당 100원 인하해 팔았더니 2분기 영업이익은 반토막난 바 있다.

물론 대부분의 정유사들은 수천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영업이익을 내고 있으니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정유부문에서 나오는 이익은 거의 없다. 정유사들에 휘발유 가격 인하를 종용하는 것은 다른 사업부문에서 번 돈으로 정유부문의 손해를 돌려막으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

그런 셈법이라면 정부 역시 휘발유 가격에 고정 부과하는 유류세율을 낮추고, 이로 인해 부족해진 세수를 다른 곳에서 늘려 채워넣으면 된다. 정부는 휘발유 가격 변동에 관계없이 ℓ당 900.92원의 세금을 고정 부과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우리나라 휘발유 가격에서 유류 관련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48.3%다.

우리나라 유류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53.3%보다 낮은 수준이다. 유류세율이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미국, 일본 등 일부에 불과하다. 비산유국인 우리나라의 세율이 휘발유값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 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물가를 잡겠다고 정유사에 기름값 인하를 압박하는 나라는 드물다는 점이다. 물가는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통해 잡는 것이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름값을 낮춰야겠다면 정부는 세수 감소를 감수하면서라도 유류세율부터 낮추는 모습을 보여야 옳다. 그래야 업계에 가격 인하를 권고하는 명분도 생기고, 업계도 손해를 보면서라도 동참할 의사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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