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영효기자] 정부가 저탄소녹색성장 정책에 혈류(자금)를 공급하기 위해 녹색금융상품 출시를 서두르고 있지만 은행들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18일 금융당국 및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7월 정부의 `녹색투자 촉진을 위한 자금유입 원활화 방안` 발표 이후 녹색예금 및 녹색채권 발행을 준비했던 은행들은 최근 상품 개발을 중단했다.
복수의 시중은행 관계자는 "방안 발표 이후 시중은행들이 상품 개발을 준비했지만 기본적인 기준 조차 마련되지 않아 잠정 중단한 상태"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녹색채권의 경우 시중은행들이 발행에 난색을 표해 산업은행에서만 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녹색예금과 채권의 핵심은 3년 또는 5년 만기의 예금과 채권을 1년 만기 수준의 금리로 발행하고 그 자금을 녹색인증 기업에 저리로 대출하는 것이다. 3년 또는 5년 만기의 예금 및 채권을 1년 만기 수준의 금리로 발행하는데 따른 금리차는 15.4%의 이자소득세 면제를 통해 보전된다.
은행들은 만기가 3~5년인 장기 예금에 대한 수요가 없다는 점을 들어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현재 시중은행 정기예금 가운데 만기가 가장 긴 상품은 3년이고, 이 마저도 가입금액은 미미한 수준이다.
은행 관계자는 "3개월마다 이자손실 없이 예금을 해지할 수 있는 회전식 정기예금이 나오는 상황에서 어떤 고객이 예금을 5년씩이나 묶어두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수요가 없는 장기 예금을 팔기 위한 당근은 금리를 높게 쳐주는 것이다. 이자소득세 면제 카드가 나온 배경이다.
그러나 은행들의 자체적인 시뮬레이션 분석결과 이자소득세 면제를 통한 금리 보전 효과는 1%포인트를 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금융위원회도 이자소득세 면제에 소득공제 혜택을 추가하려했으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반대로 무산됐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녹색채권의 경우 1인당 가입한도가 3000만원으로 제한돼 있다"며 "도매로 발행하는 채권의 특성상 시중은행들이 발행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녹색인증 기업의 범위를 확정짓지 못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금융위는 인증범위를 넓히자고 주장하는 반면 지식경제부는 닷컴버블과 같은 거품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에 반대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저리로 조달한 자금의 60% 이상을 녹색인증기업에 대출하지 못하면 미달한 부분 만큼의 비과세혜택을 은행이 물어야 한다"며 "조달은 해놓고 막상 빌려줄 곳은 마땅치 않은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국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조세특례제한법이 통과되면 녹색금융상품의 기준과 조달규모가 확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녹색금융상품의 세부기준이 내년 1월 확정된다 하더라도 녹색산업 지원이 내년중 이뤄지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녹색인증 발급에 2개월, 은행들이 녹색상품을 개발하는데 최소 3개월 이상, 자금을 조달하고 대출심사를 거쳐 실제 대출이 이뤄지는데 3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계획만 앞세우고 구체적인 건 미비한 게 많다"며 "내년에 실제 집행이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