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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생을 달리한 고(故) 송해(본명 송복희·95)씨에 대한 워싱턴포스트(WP)의 평가다. WP는 국민MC, 최고령 방송인, 전국노래자랑 진행자 등으로 잘 알려진 고인에 대해 소개하면서 그의 삶 자체가 격동기 한국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고 했다.
WP는 고인이 “한국에서 널리 인정받고 사랑받는 인물이었다”며 “전쟁의 혼란 속에서 가족과 헤어진 실향민인 그의 과거는 한반도 분단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전했다. 또 송씨가 프로그램을 통해 주류 언론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을 부각시켜 한국 사회에 다양한 면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고인은 1927년 4월 일제 강점기 북한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학교에서는 일본식 이름을 사용했고 한국어를 하면 교사들에게 구타를 당했다. 해주에서 음악학교를 다녔으며 학창시절 선전 밴드 일원으로 전국을 순회하던 중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송씨는 징집을 피하기 위해 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한 뒤 유엔 선박을 타고 남쪽의 부산에 도착했다. 그는 배 위에서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를 담아 바다라는 뜻의 ‘해(海)’라는 이름을 스스로 붙였다.
WP는 송씨가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기 시작한 시기에도 주목했다. 고인은 1988년부터 전국노래자랑 사회를 맡았는데, 한국이 독재정권을 지나 민주화를 시작하면서 경제적·사회적 변혁을 겪었던 때라는 것이다. WP는 “송씨는 한국이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도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초라한 농경사회 시절을 상기시키는 변함없는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단기간에 급속도로 성장한 우리 사회에서 많은 것이 변하거나 없어진 가운데 송해와 전국노래자랑은 그 자리를 지키면서 지난 역사와 시간을 대변해줬다는 의미다. 송씨는 지난 4월 태어난 지 94세 350일이 되는 날 세계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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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을 돌며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특성을 활용해 지역의 문화와 특징을 소개하고 특산물을 선보이는 한편, 참가자들의 사연에 귀를 기울인 점도 고인의 특별한 점으로 다뤄졌다. 고인은 지난 1월 KBS와의 인터뷰에서 “전국노래자랑에서 만난 모든 사람은 내 인생의 소중한 재산”이라고 말했다.
또 고인은 전국노래자랑 초창기부터 장애인의 참여를 독려하고, 최근에는 성 소수자를 지지하는 등 다양성을 포용하고 소외된 이들을 보듬으며 사회 통합을 위해 애썼다고 WP는 덧붙였다.
한편, 10일 새벽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송해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유족과 지인, 연예계 후배들 80여명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고인의 유해는 생전에 ‘제2고향’이라고 여기던 대구 달성군의 송해공원에 안장된 부인 석옥이씨 곁에 안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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