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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이전트간 거래가 가상자산 수요 텃밭"…블랙록이 본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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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I 2026.09.24 10: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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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록 "입법이나 기관투자 유입보다 AI결제가 코인 수요 높일 동력"
"스테이블코인 및 온체인 자산, 기계 결제 및 정산수단 활용 가능성"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자율형 인공지능(AI) 에이전트들이 상호간에 거래하기 위한 자신들만의 화폐가 조만간 필요해질 것이며, 이 화폐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은 스테이블코인이 향후 가상자산 투자 수요를 한 단계 끌어 올려줄 것이라고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전망했다.

스테이블코인과 주요 카드사 네트워크 거래 규모 추이 (이미지= 블랙록)
스테이블코인과 주요 카드사 네트워크 거래 규모 추이 (이미지= 블랙록)
블랙록은 23일(현지시간) 공개한 ‘머신 네이티브 경제(The Machine-Native Economy)’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통해 기계(=AI 에이전트) 간(machine-to-machine) 상거래가 새로운 규제 완화나 입법, 또 한 차례의 기관투자가 매수보다 가상자산 수요를 끌어올릴 더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윌 수, 로버트 미치닉 블랙록 디지털자산 리서치팀 연구원들이 주도했고, 미국 상장지수펀드(ETF)와 아이셰어즈(iShares) 상품 담당자들도 참여했다.

보고서는 “AI는 기계 네이티브 지능(machine-native intelligence)을 의미하고, 디지털자산은 기계 네이티브 화폐(machine-native money)를 의미한다”는 전제를 달고, 머지 않아 이들 두 기술이 결국 서로 만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봤다.

AI 에이전트를 통해 거래 및 금융결제 플로우 (이미지= 블랙록)
AI 에이전트를 통해 거래 및 금융결제 플로우 (이미지= 블랙록)
에이전틱 AI는 제한적인 인간의 개입만으로 여러 단계의 작업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단순히 항공편을 추천하는 챗봇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항공편을 예약하고, 결제하고, 영수증까지 전달하는 소프트웨어에 가깝다.

이 정도의 자율성이 현실화되면 곧바로 실질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결제해야 하기 때문이다.기존 지급결제 인프라는 소프트웨어가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금의 은행계좌나 신용카드를 개설하려면 신원 확인이 가능한 사람이 필요하다. 카드 네트워크 수수료는 40달러짜리 물건을 살 때는 합리적일 수 있지만, 1센트에도 못 미치는 API 호출 비용을 결제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블랙록이 제시하는 해법은 스테이블코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 같은 자산에 가치가 연동된 가상자산으로, 거의 즉시 결제할 수 있고 24시간 작동하며 은행 창구를 거칠 필요도 없다.

스테이블코인의 활동 규모는 이미 주요 결제 네트워크와 비슷한 수준에 접근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조정 기준 스테이블코인 거래량은 2025년 11조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비자와 마스터카드의 연간 거래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물론 전통적인 ACH 은행이체 시스템을 통해 이동한 93조달러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스테이블코인 거래량은 2020년 이후 연평균 약 80% 성장한 반면 ACH는 약 8.5% 성장하는 데 그쳤다.

이 보고서는 “에이전틱 AI와 기계 간 결제의 부상은 블록체인과 기타 프로그래머블 결제 인프라에 대한 수요를 늘릴 가능성이 높다”며 “스테이블코인, 네이티브 암호자산, 기타 온체인 자산은 이러한 네트워크에서 기계 네이티브 결제·정산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같은 AI에이전트 간 결제 인프라도 이미 구축되고 있다. 코인베이스의 x402 프로토콜은 과거 웹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HTTP 402: Payment Required’ 코드를 기반으로 한다. 이 프로토콜을 이용하면 소프트웨어가 데이터 피드나 API 호출을 요청하는 동시에 결제할 수 있다. 별도의 계정도, 사람의 승인도 필요하지 않다.

아마존은 코인베이스와 스트라이프를 통해 자사 AI 클라우드 도구에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연동했다. 이에 AI 에이전트는 작업 수행 도중 API, 데이터 피드, 예약 등에 직접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 구글도 코인베이스와 이더리움재단의 지원을 받아 자체적인 에이전트 결제 계층을 구축했다. 기존 Agent2Agent 프레임워크를 확장해 카드, 스테이블코인, 실시간 은행이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실제 사용량은 아직 제한적이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TRM Labs는 올해 5270만달러 규모의 x402 결제를 분석한 결과, AI 에이전트가 차지한 비중은 약 0.6~7.5%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트래픽은 진정한 자율형 AI 에이전트라기보다 일반적인 자동화 스크립트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블랙록도 이 시장이 당장 대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AI 에이전트 경제가 본격화되기 전에 결제 인프라가 먼저 구축되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보고서는 에이전틱 상거래가 정산될 수 있는 네트워크로 이더리움과 서클 아크(Arc)를 언급했다. Arc에서는 USD Coin(USDC)이 네트워크 가스 자산으로 사용된다. 블랙록은 스테이블코인 활동이 증가하면 블록체인 블록공간(blockspace) 수요가 늘고, 이더(Ether) 같은 자산의 가치 포착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컴퓨팅 파워도 투자 가능한 자산군이 될 수 있다. 결제 외에 보고서가 장기적인 기회로 꼽은 것은 컴퓨팅 파워(compute)다. AI 운영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며 클라우드 컴퓨팅 용량에 대한 수요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블랙록은 애널리스트 추정치를 인용해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의 클라우드 부문 합산 매출이 2030년 약 1조1000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2025~2030년 누적 AI 자본지출이 5조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추정치도 인용했다.

블랙록은 향후 컴퓨팅 용량이 오늘날 원유나 밀 선물처럼 표준화된 계약 형태로 거래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미래의 연산 처리능력에 대한 권리는 사고팔 수 있고, 담보로 활용하거나 블록체인상에서 자동 정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AI 에이전트는 가장 저렴한 서버 용량을 스스로 찾아 작업별로 직접 결제할 수 있다. 사람이 별도로 클라우드 계약을 협상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이런 계약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구매자들이 컴퓨팅 용량의 수량, 품질, 제공 기간 등에 대해 명확한 조건을 확보해야 한다. 공급자 역시 이러한 약속을 이행해야 토큰화된 컴퓨팅 권리가 신뢰할 수 있는 상업적 도구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블랙록은 이를 이미 대규모 시장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아니라, 향후 가능한 시나리오로 제시했다. 보고서는 “이는 기관투자자의 참여 범위를 넓히고, 컴퓨팅을 보다 광범위한 디지털자산 생태계의 새로운 투자 기회로 자리 잡게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블랙록은 AI를 가상자산 채택의 구조적 촉매로 보고 있다. 보고서는 “이 관계는 여전히 충분히 평가받지 못하고 있으며, 디지털자산이 점점 더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디지털 경제의 핵심 인프라로서 역할을 확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주장엔 코인베이스 최고경영자(CEO)인 브라이언 암스트롱도 동의하고 있다. 암스트롱은 지난 7월 가상자산 업계가 AI로 중심축을 옮겨야 한다는 주장에 반박하면서, AI 에이전트는 전통 은행망이 아니라 프로그래머블 화폐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AI가 메가트렌드라고 해서 크립토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며 “오히려 크립토를 더 중요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가상자산 기업들은 이미 이런 활동을 지원하는 도구를 구축하고 있다. 서클은 지난 5월 에이전트 지갑과 USDC 결제 도구를 공개했다. OKX의 Agent Payments Protocol은 반복 결제와 함께, 작업이 완료된 후 자금이 지급되는 에스크로형 구조를 지원하도록 설계됐다. 템포(Tempo)의 Machine Payments Protocol 역시 같은 활용 사례를 겨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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