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킬레스건
현대그룹 지배구조에 있어 현대건설이 갖는 의미, 좀 더 구체적으론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011200) 지분의 의미는 각별하다. 계열사간 순환출자 고리로 연결돼 있는 현대그룹 지배구조에서 현대상선은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현대상선을 지배하는 자가 현대그룹을 지배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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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의 지배구조는 현정은 회장측이 40.2%(이하 상환우선주 포함), 현대중공업과 KCC 등 범현대가가 30.6%, 현대건설이 8.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현 회장측과 범현대가가 4년 넘게 맞서온 상황에서 현대건설이 보유한 지분은 현대상선 나아가 현대그룹의 경영권 구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톱니바퀴다. 현대그룹이 일찌감치 현대건설 인수 의지를 표명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 부작용
문제는 현대건설 인수가 불러올 재무부담이다. 금융시장 참여자들은 재무구조가 탄탄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외형을 확장하다, 크게 뒤탈이 났던 금호아시아나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신용평가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용등급이 BBB나 A 이하인 기업이 무리하게 외형확장에 나설 경우 빚더미에 짓눌려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뛰어들 경우 실질적인 자금줄이 되어줄 현대상선의 신용등급은 현재 `A`다. 작년말 기준 현대그룹의 부채비율(금융회사 포함)은 297.31%에 달한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약정 체결을 요구할 만큼 재무사정이 순탄치는 않다.
◇ 돈 나올 곳 어디 어디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전에 대비해 비축해 놓은 실탄은 현대상선이 보유한 현금 1조2158억원(3월말 기준)을 포함해 1조3000억원 정도다. 채권단이 보유한 현대건설의 지분가치(3조~4조원)에는 크게 못미친다.
세일즈앤 리스백을 실시하면 유입되는 현금만큼 부채가 늘고 금융비용도 높아진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보통 리스 비용이 채권발행 비용 보다 높기 때문에 긴급한 유동성 마련이 아닌 경우엔 잘 활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현대증권 등 일부 계열사를 팔아 자금을 마련할 수 있지만 현대그룹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M&A업계 관계자는 "재무약정 체결을 둘러싸고 은행권과 관계가 소원해진 상황에서 재무적 투자자(FI) 영입을 통해 채무부담을 덜 수 있겠지만 FI에 대한 수익률 보장이나 풋백옵션 부여 등의 조건이 가미될 경우 우발 채무로 남아 재무건전성을 계속 위협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대안모색
현대그룹과 재무약정 체결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는 외환은행은 재무약정을 맺더라도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 참여를 제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신규투자(현대건설 인수)는 별건으로 하는 조건부 MOU를 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현대그룹의 무리한 M&A로 그룹전체가 다시 재정위기에 빠질 경우 고스란히 채권은행의 부담으로 돌아올 지 모른다는 우려가 채권단내 상존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에 따라 거론되고 있는 방안이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을 사실상 분리 매각하는 것이다. 대우인터내셔널(047050)을 인수한 포스코가 대우인터내셜이 보유했던 교보생명 지분을 내다팔듯, 옵션을 걸어 현대건설 인수자가 현대상선 지분을 일정기간내 매각하는 방안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
이 경우 현대그룹 입장에선 설사 현대건설 인수에 실패하더라도 적은 비용으로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다. 다만 유력한 인수후보에 올라 있는 범현대가가 이를 용인할 것인지가 변수다. 한편 현대그룹측은 "채권단으로부터 공식 제안이 들어오지 않은 상황에서 경우의 수를 가정해 입장을 밝힐 수 없다"며 "현대건설 인수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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