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정부와 은행노조의 기싸움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정부는 대통령 귀국전 금융지주회사 편입대상 은행을 확정하고 우량은행간 합병도 대강의 윤곽을 잡기위해 서두르고 있지만 은행노조는 투쟁노선을 확정하고 철야농성 돌입 등으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2~3개 초대형은행 출범이라는 그림에 맞춰 무리하게 통합을 추진, 노조의 반발과 세(勢)결집을 자초함으로써 금융시장 혼란만 가중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통합 발걸음 재촉하는 정부 = 재경부 관계자는 "앞으로 2∼3일동안의 기간중 외환은행을 한빛은행 중심의 금융지주회사에 편입시킬 것인지 여부와 우량은행간의 자발적 합병 방향 등이 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위 관계자도 "이번주 안에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낸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정부의 통합 추진 메시지는 이미 주요 은행들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외환의 경우 한빛과 함께 금융지주회사 편입대상으로 지목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국민,주택에 합병지침이 내려갔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정부의 의지는 그동안 통합을 강력하게 부인해 오던 은행들이 현재 부상하고 있는 시나리오에 대해 유동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데서 감지할 수 있다. 국민은행장은 주택은행과의 합병에 대해 노코멘트라며 확답을 피했다. 주택은행도 딱 꼬집어 국민이라고는 못해도 우량은행간 합병에 대해 "절대 부인" 입장은 아닌 듯하다.
◇조속 통합이 능사인가 = 정부가 당초 2차 은행구조조정의 윤곽을 연내에 확정키로 했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다. 지주회사 편입대상 확정후 설립하겠다던 금융지주회사 설립사무국부터 일정이 자꾸 지연되고 있다. 현재의 금융시장 불안과 기업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정답이 구조조정의 가속화라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어 정부의 급박한 사정을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문제는 한빛+외환이나 주택+국민의 시나리오의 경우 기업금융과 소매금융을 주축으로 하고있는 은행들끼리의 통합이라는 점에서 합병을 통한 시너지효과 창출을 기대하기 힘든 조합이라는 데 있다.
정부는 그동안 우량은행들의 합병은 전적으로 당사자들이 판단할 문제며 정부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천명해왔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을 살펴보면 곳곳에서 정부가 개입하고 있는 흔적이 역력하다.특히 지난 6일 2차 은행구조조정 추진방향 발표를 전후로 시간에 몰린 정부의 압력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 은행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정부의 일관성없는 통합,합병 추진도 문제점으로 지목받고 있다. 합병을 통한 경쟁력 제고와 국내 금융산업 재편이라는 대명제는 온데간데 없고 연내에 은행 구조조정을 가시화시켜야 한다는 명분때문에 자칫 한건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연내에 은행 구조조정에 대한 큰틀을 짜겠다는 정부의 의지와는 달리 지금까지 구체화된 것은 기껏해야 신한은행이 제주은행을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정도다. 한미은행과 하나은행도 칼라일그룹이 한미은행에 대주주로 자리잡은후부터 지지부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외환의 경우 코메르쯔방크가 합병여부를 놓고 13일 이사회를 열 계획이다.
국민+주택과 같은 대형우량은행간 합병은 대규모 인력감축을 불러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정부내부에서도 나오고 있어 정부내에서조차 통일된 정책방향을 찾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지방은행 처리방향를 놓고 금융지주회사 편입에서 우량은행과의 합병을 독려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부터가 정부정책의 무일관성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결사저지 나선 은행노조 = 10개 시중은행 노조들은 11일 비상대책회의를 갖고 철야농성을 결의하는 등 투쟁중심의 노선을 확정했다. 정부가 지난 7월 파업당시 강제통폐합은 없으며 인력 및 조직감축은 노사협의를 존중키로 해 놓고도 밀실에서 통합구도를 짜고 밀어부치기로 일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10개 은행 지부와 금융노조는 철야농성과 함께 노사정위를 가동, 정부측과 대화를 모색하지만 금융노조의 입장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다.
통합대상으로 떠오른 은행노조에서는 인력감축 등을 우려, 합병찬반 투표 등으로 명분쌓기에 돌입했다.
투쟁대열에 동참한 은행들의 수는 2단계 은행 구조조정 추진방향 발표이전에는 평화와 일부 지방은행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국민 주택 외환 조흥 등 대형은행들도 가세하고 있다. 정부의 밀어부치기식 구조조정이 은행들의 세결집에 유리하게 작용, 자칫 파업결의라도 이뤄질 경우 지난 7월 은행파업에 못잖은 파괴력을 갖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