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투자자가 원화를 달러로 바꾸면 외환거래가 된다. 반면 원화로 USDT를 매수하면 가상자산 취득거래다. 두 거래 모두 원화 자산을 달러 또는 달러 가치에 연동된 자산으로 전환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적용되는 법률과 규제체계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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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원화를 달러로 환전해 외화예금으로 보유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가능하다. 다만 그 달러를 해외부동산 취득이나 해외직접투자, 비거주자에 대한 대여 등 자본거래에 사용하면 거래 유형과 요건에 따라 신고·보고나 증빙서류 제출 등의 절차가 적용될 수 있다. 결국 외환규제의 초점은 단순히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지보다 자금이 국경을 넘어 어떻게 이동하고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지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데 있다.
USDT나 USDC는 출발점이 다르다.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에서 원화로 이를 매수하는 것은 외국통화인 달러로 환전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자산을 취득하는 거래다. 그러나 가치저장이나 국경 간 지급에 활용되고 달러 가치의 변동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그 기능이 달러와 가까워질수록 두 자산에 적용되는 규제의 차이도 더욱 중요해진다.
은행을 통해 달러를 해외로 송금하면 금융기관이 거래 당사자와 송금 목적 등을 확인하고 필요한 외국환 절차를 거친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국내 거래소에서 매수한 뒤 해외 거래소나 상대방의 블록체인 주소로 온체인 전송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전통적인 달러가 ‘원화→은행→달러 환전→해외송금’의 경로를 따른다면, 스테이블코인은 ‘원화→가상자산거래소→USDT 매수→온체인 전송→해외 거래소 또는 개인지갑’이라는 새로운 이동 경로를 가질 수 있다.
물론 스테이블코인이 규제 밖에 있는 것은 아니다. 가상자산사업자는 특금법에 따라 고객확인과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담하고, 현재 가상자산사업자 간 100만원 이상 상당의 가상자산 이전에는 트래블룰이 적용된다. 2027년 2월 19일부터는 개정 시행령에 따라 이러한 금액 기준이 폐지되어 가상자산사업자 간 모든 가상자산 이전으로 적용 범위가 확대된다.
그러나 자금세탁방지 규제와 외환규제의 목적은 다르다. 전자는 불법자금 세탁과 범죄수익 이전 방지에 중점을 두고, 후자는 국경 간 지급과 자본이동의 관리, 외환시장 안정이라는 거시경제적 목적도 가진다. 스테이블코인의 국경 간 활용이 커질수록 두 규제체계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가 중요해지는 이유다.
이 문제는 ‘디지털 달러라이제이션(Digital Dollarization)’의 관점에서도 볼 필요가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은행에서 달러를 환전하거나 달러 지폐를 보유하지 않아도 스마트폰을 통해 비교적 쉽게 달러 가치 자산을 보유할 수 있게 한다. 국제결제은행(BIS)의 2026년 연차경제보고서에 따르면, 시장가치 기준 법정화폐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의 99.4%가 미국 달러에 연동돼 있다.
원화 약세나 금융시장 불안이 심화될 때 국내 경제주체가 달러예금뿐 아니라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유효성과 국경 간 자금이동의 규모·변동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BIS도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의 광범위한 확산이 통화정책과 거시금융 안정에 새로운 과제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금융규제에서는 각 자산이 실제 시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위험을 발생시키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단순한 보유와 반복적인 대규모 국경 간 지급은 규제상 의미가 다를 수 있다. 후자의 기능이 기존 외환송금과 유사해진다면 외환 모니터링 체계와의 연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이러한 변화에 맞춰 외환관리 체계를 손질하고 있다. 2026년 6월 개정된 외국환거래법은 ‘가상자산이전업무’라는 개념을 새로 도입하고(제3조 제1항 제23호), 가상자산사업자가 대한민국과 외국 사이에서 가상자산 이전업무를 하려면 일정한 요건을 갖춰 등록하도록 했다(제8조의2).
또한 가상자산 이전에 관한 정보를 관련 기관이 중계·집중·교환·분석할 수 있도록 하고(제25조 제2항), 사업자의 전산망을 이러한 정보관리 체계와 연결하도록 했다. 가상자산 자체를 외국통화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해외로 오가는 가상자산의 흐름을 외환당국이 보다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관련 규정은 2026년 12월 3일부터 시행된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은행이 추진하는 기관용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와 은행 예금토큰 논의와도 연결된다. 이를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볼 수는 없다. 지급결제 효율화, 금융자산의 토큰화, 일정한 조건에 따라 자동으로 대금이 지급되는 프로그래머블 지급(programmable payment) 등 다양한 목적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빠르게 성장하는 상황에서 중앙은행과 시중은행이 원화 기반의 디지털 지급수단과 결제 인프라를 발전시키는 것은 원화 중심의 통화체계를 유지하고 지급결제의 안정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앞으로 디지털 금융시장에서는 기관용 CBDC, 은행 예금토큰, 원화 스테이블코인, USDT·USDC와 같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면서 공존하고 경쟁하게 될 것이다. 특히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원화와 경쟁할 수 있는 달러 가치 자산이라는 점에서 통화정책과 외환정책에도 새로운 대응을 요구한다.
2026년 외국환거래법 개정은 가상자산을 통한 국경 간 가치이동을 외환관리 체계와 연결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첫걸음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달러와 USDT를 단순히 서로 다른 자산으로 구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기능과 위험, 자금이동 경로를 함께 살펴 가상자산 규제와 외환규제를 보다 정교하게 연결하는 것이다.
디지털자산 시대의 외환규제도 이러한 관점에서 새롭게 설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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