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당시 국내 4대 재벌 중 하나였던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은 ‘동경구상’이라는 것을 했다. 이 회장은 매년 1월1일 신정을 도쿄에서 보내면서 세계 시장으로 나아가는 삼성의 신사업에 대해 구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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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도쿄의 위상은 아시아에서 가장 앞서가는 최고·최대 도시였다. 특히 19세기 이후 서양 근대문명을 가장 잘 흡수해 성공적인 경제모델을 마음껏 자랑하고 있을 때였다. 한국은 물론 세계가 일본의 성공사례를 보고 배우고 연구하던 때였다. 반대로 미국은 지는 해였다.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사업을 동경구상에서 결심했다.
필자는 이른바 버블경제가 최고치를 다다랐을 때 도쿄를 처음 방문했다. 보통 책이나 방송, 학교를 통해 다른 이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 보고 배운다고는 하지만, 문화란 체험해보지 못하면 느낄 수 없는 법이다.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게 문화인 것이다.
도쿄인들이 궁금했다.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최강의 경제부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여기서부터 탐험은 시작됐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부터 눈에 띄기 시작한 수많은 자동판매기의 대열. 이 수많은 자판기를 채우고 있는 셀 수도 없을만큼의 다종다양한 음료수들. 가끔 동생과 수퍼마켓에서 “콜라 마실래, 사이다 마실래”를 가지고 티격태격했던 것에 피씩 웃음이 나왔다.
도쿄에서 가장 싼 배낭족 숙소라는 오쿠보하우스를 찾아 JR신주쿠역에 내렸다. 일개의 전철역에 불과한 곳인데 국내의 서울역을 압도할 만큼 휘황찬란했다. 수 십 군데의 출구와 거미줄 같은 수십 가지 노선들 속에서 내가 갈 역을 어떻게 찾으란 말인가. (당시 서울의 전철 노선은 4개에 불과했다.)
아키하바라, 세계 최대의 전자상가에 섰다. 소니의 워크맨, 코끼리표 전자밥통, NEC-PC98 컴퓨터, 어린 시절 보고 자란 수많은 애니메이션 캐랙터숍에는 우주소년 아톰부터 마징가Z, 은하철도999 등이 눈에 띄었다. 이병철 회장이 왜 삼성전자를 세우고, 반도체 사업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는지 아키하바라는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 주말 1박3일짜리(1박은 호텔, 오고갈 때 2박은 야간 비행기) 매우 경제적인 여행상품으로 도쿄를 다시 찾았다.
불거진 독도와 종군위안부에 따른 한일 간의 대립, 그리고 쓰나미와 방사능의 아우라 아래 비행기는 어슴푸르한 새벽녘 하네다공항에 도착했다.
바로 “하이! 하이!”(네, 네)를 외치는 일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추월하지 않는 자동차의 행열. 역 앞 손님을 기다리며 늘어선 빨강 ‘空車’의 택시들 역시 여전했다. 20년 전 100엔짜리 자판기 음료수가 지금은 130엔으로 올랐을 뿐 내 눈에 비친 도쿄는 그대로였다.
그 사이 아키하바라에서 가장 큰 전자제품 양판점 요도바시카메라 1층 휴대폰 매장에는 인기 제품으로 `갤럭시S3`가 가득 진열돼 있었다. 이병철 회장의 `동경구상`이 30년 만에 `동경현상`이 되어 있는 셈이었다. 스무해의 세월 동안 동경에 대한 만감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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