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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포용금융 확대에 나서며 저신용자 대출 금리가 더 낮은 ‘역전 현상’이 나타나자 고신용자·성실상환자가 역차별을 받는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저신용자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대책이 자칫 금융의 기본 원칙을 흔들고, 연체율 관리 부담 증가와 대출 공급 위축 등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4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연체채권 소각·신용사면 등에 이어 올해 저신용자 지원을 확대한다. 이에 따라 정책금융 상품의 금리를 인하하며 공급을 확대한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신년사에서 “금융의 문턱을 낮추고 부담을 덜어내는 포용적 금융을 확대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런 기조는 이미 시중 금융권 금리에도 반영되고 있다. 일부 은행에선 신용점수가 더 높은 대출자의 금리가 낮은 신용점수의 대출자보다 높은 현상이 나타났다. 이재명 대통령도 취임 후 “가난한 사람이 더 높은 이자를 내는 건 금융계급제”(지난해 11월 수석보좌관 회의)라며 저신용자의 이자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하지만 고신용자, 성실상환자 사이에선 ‘역차별’을 받는다는 불만이 확산하고 있다. 소셜미디어(SNS) 등 온라인 커뮤니티엔 “고신용은 대역죄” “성실을 보상하지 않는 이상한 사회” 등이 불만글이 올라왔다. “저신용자 금리를 고신용자보다 낮게 대출해주는 게 불법대출 아닌가”란 반응까지 나온다. 정부가 정책금융상품의 금리를 대폭 인하한다는 발표에는 “빚 잘 갚고 있는 사람에겐 뭘 해줄 거냐”는 질문이 뒤따랐다.
금융권 내부에서는 포용금융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란 시장의 위험을 비용으로 반영하는 시스템인데 그 부분을 인위적으로 원칙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코로나19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해 상환능력이 떨어져 저신용자가 된 취약 차주가 많은데, 대통령의 포용금융 요구도 이런 차주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고신용자에게 금리를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가 설계될 경우 금융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고, 같은 상황에서 성실히 상환해 온 차주들의 박탈감이나 일부 취약 차주 중심의 도덕적 해이기 확산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포용금융이라는 정책 기조 아래 금리가 ‘복지 수단’처럼 활용되며 신용도에 따라 위험을 반영해 온 금융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저신용자에게 저금리로 대출을 확대할 경우 연체율 관리 부담이 커지고 은행들이 이를 피하기 위해 오히려 저신용자 대출 공급 자체를 축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대중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책적 개입이 반복되면 은행의 자율적 위험 관리 기능이 약화되고 수익성과 건전성이 동시에 훼손될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 대출 축소, 금융 중개 기능 약화, 금융시스템의 전반적인 안정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저신용 차주는 정책금융이 담당해 위험을 흡수하고, 시중은행은 시장 원리에 따라 금리를 산정해 왜곡 없는 가격신호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신용자가 곧 저소득층은 아닌데 용어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혼동이 생기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신용자 대상 정책금융상품 금리도 대폭 인하하고 채무감면도 실시해주는 반면 고신용자, 성실상환자에겐 인센티브가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취약계층에게는 금융정책의 방식보다 사회 안전망 차원에서 적절한 수준의 재정정책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