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in | 이 기사는 03월 11일 10시 43분 프리미엄 Market & Company 정보서비스 `마켓in`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
[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부동산 불패신화`. 1970년대 개발독재 이후 한국사회를 관통한 말이다(적어도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는). 그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건설회사는 물론 은행, 저축은행까지 모두가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지렛대 삼아 부동산 개발 투자에 나섰다.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주고 끌어들인 돈은 부동산 가격이 이자율 이상 올라주면 그만이었다. 은행은 높은 이자를 거두고, 건설회사들은 짭짤한 수익을 가져갔으며, 소규모 시행사들도 콩고물을 나눠가졌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금융당국은 단지 관찰자였다.
호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치며 경기는 꽁꽁 얼어붙었고, 빚을 내 집을 사기보다는 일단 유동성을 확보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은행들은 PF 만기 연장대신 여신 회수에 나섰고, 신용도가 낮은 건설사들과 덩치에 맞지 않게 과도한 빚을 내준 저축은행들이 휘청거리다 쓰러졌다. 최근 영업정지된 저축은행과 워크아웃에 들어간 건설사들은 결국 부동산 불패신화의 짙은 그림자다.
상황이 이쯤됐는데도, 아직 정부는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 하다. 20대 건설사 총부채의 절반을 웃도는 PF보증채무가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올 지 예측하고 대비해야 하는 게 정석 아닌가.
신용평가사들은 PF발 건설사 부실이 향후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PF대출채권과 관련해 건설사들의 추가 신용등급 하락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금융권이 PF대출 축소에 나서며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통한 차환 비중이 높아졌고, 금융권이 ABCP 매입보장 약정을 꺼리면서 만기마저 짧아져 건설업체의 유동성 이슈를 부각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건설협회가 지난 4일 공개한 `SPE(Special Purpose Entity·특수목적기업) 연결 자율지침`으로 전체 시행사의 80%이상이 건설사 연결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하지만 시행사의 부채를 건설사 연결 재무제표에 반영하는 문제는 크레딧 업계에서 보자면 그리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이미 건설사들의 재무제표는 신뢰(?)를 잃은 지 오래기 때문이다. 기업의 적정등급을 매기는 신용평가사들은 건설사들의 총부채에 PF보증채무를 더해 자기자본으로 나눈 조정부채비율을 더 의미있게 살피고 있다.
한신정평가에 따르면 작년 9월말 기준 분석대상 건설사의 부채비율 중앙값은 149.8%였고, 조정부채비율은 246.4%로 PF보증채무가 건설사 부채비율을 100%가량 상승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건설사들은 연결대상 시행사가 늘어날 경우 부채비율 상승에 따른 해외수주의 어려움을 들어 선처를 호소했고, 금융당국도 이를 묵인했다. 그 결과 건설사들의 명목상 부채비율은 별로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건설사들이 보유한 PF사업장 부실이 지속되는 한 숫자에 반영되지 않는 건설사의 리스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때문에 건설사들의 PF 부실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정보 제공은 무엇보다 절실하다. PF사업장별 현황에 대한 공시 강화가 일례지만, 금융당국은 여전히 뒷짐만 지고 있다. 굳이 나서서 그렇게 자세히 공시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했다. 정보가 많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저축은행 부실에 상당한 혈세가 들어가게 생겼고, PF사업을 벌여놓은 건설사들이 쓰러져 가는데도 금융당국의 스탠스는 안이하기 짝이 없다.
회사후소(繪事後素). 그림을 그리려면 흰 바탕이라는 본질이 먼저란 얘기인데 작금의 사태를 바라보면서 자꾸 맴도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