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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인수戰]④현대그룹 "원래부터 주인은 우리였다"

김국헌 기자I 2010.10.28 12:45:00

주인의식으로 4년간 현대건설 인수 준비
수많은 풍파 이긴 현대號의 마지막 임무
현대건설, 현대그룹에 소속감..조직통합 강점

[이데일리 김국헌 기자] 지난 2006년 8월5일 금강산에서 열린 고(故) 정몽헌 회장의 3주기 추모식. 마이크를 잡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머릿속에는 비운에 스러져간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나를 지켜보는 수많은 직원과 식구들이 있지 않은가.` 현 회장은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대건설은 원래 현대그룹에 속해 있었고, 정몽헌 회장은 어려워진 현대건설을 살리기 위해 많은 애를 썼습니다." 현 회장은 "현대건설 인수를 올해 남은 반년의 목표 로 설정해 매진하고 있다"며 인수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로부터 4년 동안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의 주인이란 의식을 갖고 치밀하게 인수전에 대비해왔다. 주력 계열사들은 필요한 투자만 집행하고 계열사 내에 인수자금을 쌓았고, 그룹 전략기획본부는 인수 전략을 세우고, 파트너들을 물색했다.
 
그리고 지난 8월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증권 등 주요 계열사는 담담하게 인수전 참여 의사를 공시로 밝혔다. 현대건설 채권단은 매각공고를 10월 초에서 9월 24일로 앞당겼다.
 
시숙 정몽구 회장이 경영하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새로운 성장동력의 하나로 현대건설을 인수하겠다고 의지를 밝힌 것과 달리, 현대그룹은 `잃었던 현대건설을 되찾기 위해` 이번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형편 고단했던 시절 고아원(채권단)에 맡긴 큰 아들(현대건설)을 이제는 데려와서 집안의 기둥으로 삼겠다는 것이 현대그룹의 기본적인 생각. 큰 아들을 데려오지 못하면 집안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그런데, 그동안 관심을 보이지 않던 시숙(현대차그룹)이 집안의 큰아들이니 우리가 데려가 잘 키우겠다고 나섰다.
 
현대그룹은 집안끼리 얼굴 붉히는 일이 있더라도 이번 인수전 만큼은 꼭 성사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시숙은 소위 잘나가는 집안, 동원할 자금도 많다. 그래서 현대그룹은 명분을 내세워 시숙집안과 명운을 건 일전에 돌입했다.

◇수많은 풍파 이긴 현대호의 마지막 임무

▲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현 회장은 지난 21일 취임 7주년을 맞아 전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 이메일 속에 현대건설 인수는 임무 완수를 뜻하는 스페인어 `미시온 쿰플리다(Mision Cumplida)`로 표현됐다.

지난 2003년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의 부재 속에 회장에 취임한 현 회장은 수많은 바람과 파도 속에 현대호를 지켜냈다.

왕자의 난, 대북사업 풍파, 유동성 위기로 엉망이 된 조직을 추스리기도 힘든 상황에서 많은 시련이 있었다.
 
지난 2003년 남편의 숙부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경영권 분쟁 시도, 지난 2005년 김윤규 현대그룹 부회장 퇴진으로 인한 대북 갈등, 지난 2006년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의 경영권 위협, 지난 2007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등을 모두 극복해왔다.

그리고 잃었던 자산을 대부분 되찾았다. 지난 2000년 정리금융공사에 넘겨준 현대로지엠(옛 현대택배) 지분 20.6%를 작년에 다시 인수했다.

또 자금난에 컨테이너선 부두 3곳을 매각했던 현대상선은 지난 2월 부산 신항 남쪽 컨테이너 부두에 대지 55만㎡, 안벽 길이 1.15km, 수심 17m 규모의 최신식 터미널을 개장했다. 지난 3월에는 연지동에 사옥을 마련했다. 이제 남은 것은 현대건설(000720) 뿐이다.

현 회장이 이메일에서 밝힌 "7년간 한결같이 임직원 여러분과 함께 꾸고 간직했던 꿈을 위해 이제 마지막 한걸음이 남았다"는 문구는 현대그룹 위기극복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에겐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주인의식으로 현대건설과 동행..동일한 `현대정신`

현대자동차(005380)가 건설을 외면한채 자동차에 집중할 때, 현대건설을 살리기 위해 수많은 돈을 쏟아부은 것은 현대자동차가 아니었다고 현대그룹은 역설한다. 현대건설은 현대그룹 모태이자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의 피와 땀이 서린 기업이라는 것이 현대그룹측 주장의 골자다.  
 
부자(父子)는 지난 2000년 유동성 위기에서 현대건설을 살리기 위해 사재 4400억원을 쏟아부었고, 며느리는 올해 금융권의 손에서 현대건설을 되찾기 위해 채권단과 송사도 불사했다.

채권단이 유동성 위기를 부른 구(舊)사주의 책임을 문제삼고 있지만, 경쟁 후보인 현대차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현대그룹쪽 생각이다. 1990년대에 정주영 명예회장의 2남인 정몽구 회장이 5남 정몽헌 회장과 함께 공동으로 현대그룹을 이끌었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현대그룹은 강조했다.

비록 채권단 아래 워크아웃을 졸업했지만, 현대건설의 소속감은 유별나다. 현대그룹은 "현대그룹과 현대건설은 하나의 뿌리에서 분리돼 조직, 인력,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동질하다"며 "현대정신으로 대표되는 문화의 공유는 향후 인수시 현대건설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 수 있는 현대그룹만의 경영능력이자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현대그룹의 주인의식은 채권단 소유의 현대건설을 계열사로 챙겨온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현대그룹은 계열사의 크고 작은 공사를 현대건설에 발주하며, 채권단 아래  있는 현대건설을 집안 식구로 대해왔다.
 
현대건설 임원진도 현대차보다는 현대그룹에 더 강한 소속감을 갖고 있다는 게 그룹측 설명. 인수·합병(M&A)의 진정한 성패는  본계약 이후 통합작업에 달려있다는 점에서 현대그룹은 자금력에서는 열세지만, 조직통합 측면에서는 현대차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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