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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개편안이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의 후퇴라는 의견도 있지만 주당 근로시간의 상한을 정해 놓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노동 약자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어렵다는 게 윤 대통령의 설명이다. 노동자들의 건강권, 휴식권 보장과 포괄임금제 악용 방지를 통한 정당한 보상에 조금의 의혹과 불안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근로시간 개편안의 골자는 근로시간에 관한 노사 합의 구간을 주 단위에서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자유롭게 설정해 노사 양측의 선택권이 넓어지고 노동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난 6일 고용부의 발표 때에는 주당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고, 휴가도 몰아서 쓸 수 있다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논란을 키웠다. 특히 노동계는 물론 MZ세대들까지 반발하자 대통령실에서는 사회수석과 국정기획수석이 연이어 브리핑을 열어 ‘주 69시간제’에 대해 부정하며 개념 정리에 안간힘을 쏟기도 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주 69시간제’는 정부가 아닌 언론에서 만든 키워드라는 점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주당 몇 시간 근무’라는 표현보다 노사 자율에 따라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바꿀 수 있다는 점과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노사의 합의에 맡긴다는 점을 부각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주당 최대 69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다는 부작용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 충분히 설명했었다면 ‘주 60시간은 무리’, ‘주 평균 48.5시간’이라고 부연할 필요도 없지 않았을까.
전문가들도 숫자로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동전문가는 “근로시간은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선택권의 문제”라며 “세계 어떤 나라도 근로시간을 숫자로 정해 놓지는 않는다. 선진국인 프랑스의 경우 정부가 더는 간섭하지 않고 노사 선택의 문제로 바꿨다는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동자 누구나 짧게 일하고 돈을 많이 받는 게 행복한 거 아닌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노사 당사자들이 자율적으로 정해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도 노동개혁의 첫째 과제는 노사법치 확립이고, 또 다른 과제로 노동시장 유연화를 꼽았다. 전문가 의견도 윤 대통령의 정책 철학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근로시간 개편안 발표 시기도 아쉽다. 고용부가 관련 내용을 발표했던 지난 6일에는 외교부에서 ‘강제징용 배상문제 해법’ 발표가 있었다. 전날부터 주목받던 이슈였던데다 윤 대통령의 방일도 예상되던 시점이었던 만큼 강제징용 문제가 모든 이슈를 잠식하던 때였다. 조금 더 다듬고 준비한 후 발표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어찌 됐든 논란은 커졌고, 온 국민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제부터는 여론 수렴을 거쳐 개편안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고용부에 세밀한 여론조사를 지시한 윤 대통령은 “MZ근로자, 노조미가입 근로자, 중소기업 근로자 등 노동 약자와 폭넓게 소통할 것”이라며 “노동시장 유연화 등 새로운 입법이 필요한 노동개혁 과제에 관해 국민들께서 좋은 의견을 많이 제시해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 모두발언 말미에 언급한 내용처럼 국민을 위한 제도를 만드는데 서두르지 않고, 충분히 숙의하고 민의를 반영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