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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 42번가' 안주하지 않는 클래식의 힘[문화대상 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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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 기자I 2025.07.22 06:10:00

심사위원 리뷰
1996년 한국 초연, 올해로 39년째 공연
60여개 다리가 만들어내는 탭 댄스 경이
장면마다 달라지는 쇼뮤지컬의 풀코스
맥락 있는 연출, 앙상블 협업의 매력 선사

[장경진 공연칼럼니스트] 1996년에 한국 초연을 시작해 올해로 39년째 공연하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대표적인 쇼뮤지컬로 꼽힌다. 60여 개의 다리가 만들어내는 탭댄스는 경이롭고, 장면마다 달라지는 무대의상과 소품들도 화려하다. 재즈를 바탕으로 한 넘버 역시 흥겹다. 하지만 쇼뮤지컬의 화려함은 때때로 독이 되어 작품의 의미를 축소하기도 한다. 수많은 시스템으로 더 이상 진흙 속에서 진주를 찾기 힘든 시대, 하룻밤 사이 스타가 되는 시골 소녀의 이야기는 관객의 공감을 크게 얻기 어렵다. ‘브로드웨이 42번가’가 ‘올드하다’는 평을 듣는 이유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공연 장면(사진=CJ ENM·샘컴퍼니).
그런데 2025년의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신선하다. 가장 큰 변화는 작품을 바라보는 연출가의 시선이다. 오루피나 연출은 작품의 역사를 존중하되, 쇼에 가려진 서사의 깊이를 끌어내고 현대적인 호흡과 미감으로 무대를 완성했다. 이런 변화는 탭댄스를 다루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공연 시작 전, 닫힌 막 뒤로 불규칙한 ‘탭’ 소리가 들린다. 막이 오르면 관객은 소리의 출처가 오디션 현장임을 알게 된다. 앞에 들린 탭소리가 때를 기다리며 연습을 놓지 않는 이들의 것임을 인지한 순간 탭댄스는 열정과 성실함을 상징하는, 춤 그 이상의 것이 된다.

장경진 공연칼럼니스트
창작진은 탭댄스가 춤이자 음악이라는 점에서 착안해 장면마다 서로 다른 리듬을 만들었다.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 빠른 호흡과 시청각적 쾌감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탭댄스를 통한 정서 전달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무대 위 탭댄스는 무대를 향한 간절함, 연습 끝에 느껴지는 성취감, 슬픔을 이겨내고 서로를 위로하는 힘으로 객석에 전달된다.

탭댄스 자체의 의미가 깊어지자 △극중극 ‘퍼스트 레이디’의 제작 과정 △작품을 둘러싼 인물의 감정과 맥락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 이번 공연에서는 연출가 줄리안 마쉬 역에 여성 배우 박칼린을 캐스팅해 새로운 시각을 더한다. 그 결과 ‘브로드웨이 42번가’는 훌륭한 개인의 성공이 아닌 ‘협업’으로서 뮤지컬이 가진 매력을 보여준다.

쇼뮤지컬로서의 매력도 한층 깊어졌다. 올해는 2022년 버전보다 5명 늘어난 31명의 코러스 배우가 ‘브로드웨이 42번가’에 참여한다. 무대가 좁게 느껴질 정도로 가득한 배우들의 앙상블이 작품의 에너지 레벨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조명과 무대세트, 배우들의 움직임이 더해진 여러 댄스 장면들은 간직하고 싶을 만큼 아름답고 화려하다. 그리고 모든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이 시작되면, 코러스 배우들이 객석으로 내려온다.

‘먼지’로 불리던 이들이 각자의 모습으로 관객을 직접 만날 때, 꿈꾸고 서로를 응원하던 무대 위 이야기는 지금 우리의 이야기로 퍼지며 긴 여운을 남긴다. 클래식의 신선함을 증명하는 무대가 바로 2025년의 ‘브로드웨이 42번가’에 있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공연 장면(사진=CJ ENM·샘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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