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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 길 건너 혜화역 1번 출구 주변에 모인 30여명은 “2차 가해를 중단하라”며 “사법부 유죄추정 규탄 집회‘는 그 자체로 2차 가해”라고 맞섰다. 뚝 떨어진 기온 탓인지 당초 주최측 예상보다 적은 사람들이 모였다.
지난해 9월 대전의 한 곰탕집에서 남성이 여성 신체 일부를 만졌다는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이 ‘곰탕집 성추행 사건’이르는 이름으로 온라인상에서 논란이 되면서 서울 도심에서 성범죄에 대한 유죄추정 원칙에 대한 찬반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사법부의 유죄추정을 반대하는 쪽은 “범죄의 사실은 검사가 증명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반면 반대 측은 “곰탕집 성추행 사건의 판결에 문제가 없다”며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추라”고 비난했다.
◇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 사법부 규탄” 주장
‘곰탕집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인터넷 카페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당당위)는 이날 오후 ‘사법부 유죄추정 규탄 시위’를 개최하고 “(유죄추정으로 인해) 개인이 쉽게 범죄자가 되며 결백을 위해 자살까지 하는 사회”라며 “더 이상 유죄추정을 그만두고 무죄추정을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당위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김재준(28)씨는 이날 무대에 올라 “하지 않았다는 일을 증명하기 위해선 스스로 CCTV를 몸에 달아 평생 촬영을 해야 하냐”며 “무죄증명을 위해서 피의자나 피의자 가족들은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천운이 따라야 증거를 찾을까 말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이어 “당당위가 모은 유죄추정 사례를 보면 한 딸은 아버지가 억울하게 직장에서 잘려서 속만 썩고 있고 한 어머니는 친구간의 일탈로 아들이 성폭행범으로 몰려 감옥에 들어갔다”며 “청와대 청원해봐야 바뀌는 것 없고 이렇게 모여 소리 높여 외쳐야 그나마 들어주는 시늉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발언자로 나선 당당위 카페에서 ‘우지’라는 닉네임을 쓰는 한 여성은 “성(性) 갈등 유발하는 단체라는 편견과는 달리 우리는 한 성의 편만 들지 않고 다른 성을 적으로 두지 않는다”며 “억울하고 힘든 사람이면 남자든 여자든 그 사람의 편을 들어줄 뿐”이라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강제추행치상으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영화배우 조덕제(50)씨도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이 무너졌다는 것”이라며 “제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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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유죄추정 규탄 시위’에서 150m 정도 떨어진 혜화역 1번 출구 앞에서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남함페)’가 ‘2차 가해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곰탕집 성추행 사건’은 CCTV 영상과 피해자의 진술 등의 증거를 통해 재판이 이루어졌다”며 “해당 재판은 철저히 증거재판주의에 입각한 정당한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상충되는 주장이 있을 때에 가해자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는 상황은 성범죄에서 피해자를 비난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며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징역 살게 하려고 갑자기 뒤를 돌아보고 무고한 사람에게 성추행을 했다고 말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법부 유죄추정 규탄 집회’는 전형적인 2차 가해의 문법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며 “피해자의 이야기는 ‘꽃뱀의 변명’으로 치부하며 삭제해 버리는 선택적 수용은 형사소송법이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증거조차 외면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경찰은 맞불 집회로 인한 충돌에 대비해 9개 중대 약 600여명의 경력을 배치했다.
앞서 부산지법 동부지원이 곰탕집에서 한 여성의 신체를 만졌다는 혐의(강제추행)로 재판에 넘겨진 남성 A씨에게 지난 9월5일 1심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이후 피고인의 아내가 남편의 결백을 주장하는 사연이 알려지며 온라인 상에서 논란이 됐다. 이후 A씨의 아내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제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 글에는 마감일인 지난 6일까지 33만명이 넘는 인원이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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