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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지난 2015년 11월 1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뒤, 317일간 사경을 헤매다 지난해 9월 25일 서울대병원에서 끝내 숨졌다.
◇故백남기 농민 1주기 추모…“촛불헌법 완성하자”
농민·노동·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백남기 투쟁본부’는 이날 오후 주최 측 추산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종로1가 르미에르빌딩 앞에서 ‘백남기 농민 뜻 관철과 농정개혁을 위한 전국농민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정부의 농업정책을 비판하는 한편 농민헌법운동본부 발족을 선언하며 헌법 전문에 식량 주권의 문제 및 먹을거리의 기본권, 농업의 공익적 기능과 다원적 가치를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호 농민의 길 상임대표는 이 자리에서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곳에서 우리가 제2의 백남기 농민이 돼 일어나자. 백남기 농민처럼 농민 헌법 쟁취를 위해 뚜벅뚜벅 걸어가자”고 제안했다.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농민들은 막 추수한 벼 이삭 한 움큼을 든 채 고인을 추모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등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던 얼굴들도 다시 모였다. 이들은 “지난해 촛불혁명이 정권을 교체했다면 올해 촛불혁명은 헌법을 교체해 농민과 노동자를 위한 촛불 헌법을 완성하자”고 주장했다.
농민대회를 마친 이들은 오후 7시 광화문 광장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추모행사를 이어갔다.
사회를 맡은 김덕진 백남기 투쟁본부 공동집행위원장 겸 천주교인권위 사무국장은 “백남기 농민은 난폭한 공권력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이라며 “최근 이낙연 국무총리가 정부의 과오에 대해 사과했지만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말했다.
정현찬 백남기 투쟁본부 공동대표 겸 가톨릭 농민회 의장은 대회사에서 “식량을 우리 힘으로 지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백남기 농민의 정신”이라며 “이 땅의 농민·노동자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고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하는 게 백남기 정신을 이어받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의장과 유경근 5·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등 각계 추모사에 이어 송경동 시인이 추모시를 낭송하고 가수 이상은씨가 추모 공연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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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대회에 앞서 이들은 ‘농정대개혁 즉각 단행’ ‘쌀 가마당 24만원 보장’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 한 대를 앞세운 채 종로 거리 일대를 행진했다. 종로 중앙버스전용차로(세종대로 사거리∼흥인지문 2.8㎞) 구간 공사 양 방향 2개 차로를 제외한 3개 차로를 차지했지만, 경찰이 약속한 대로 시위현장에서 차벽과 물대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종로구청 인근 사거리가 추모대회에 참가한 농민들로 가득 찼지만, 우려했던 극심한 교통정체는 빚어지지 않았다. 주말을 맞아 도심 나들이에 나선 시민도 이들 행렬 사이를 자유롭게 오갔고, 외국인 관광객들은 신기한 듯 이런 광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전날 대책회의를 여는 등 다소 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추모대회는 별다른 충돌 없이 평화롭게 진행됐다.
경찰은 앞서 지난해 화물차량 등을 동원한 전농의 상경 투쟁을 차단한 조치가 헌법상 기본권 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 판단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교통 혼란을 야기하지 않는 이상 트랙터 등 차량 시위를 제지하지 않기로 했다.
집회 장소 인근에 있는 D타워 측 관계자는 “사전에 집회가 실시된다는 안내를 받았지만 이전과 달리 경찰이 차벽을 설치하지 않아 손님들이 불편을 겪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4살 된 딸과 함께 주말 나들이를 나온 김모(35)씨는 “집회 참가자들과 경찰들이 서로 자극하지 않아서인지 예전과 달리 평화로운 분위기”라며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 덕택인지 양측 모두 새로운 집회 문화에 적응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추모대회에 참가한 직장인 남모(30)씨는 “차벽을 치고 집회 참가자를 끌어내고 채증까지 하는 경찰에 집회·시위 문화도 과격해진 측면이 있다”며 “오늘처럼 추모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자연스럽게 집회·시위 분위기도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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