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경찰은 합동수사본부를 차려놓고 지난 5월20일 전주지검 남원지청에서 조사를 받다 영화처럼 탈주에 성공한 이대우의 행방을 뒤쫓고 있다. 그는 검찰청사를 도망쳐 1분 만에 수갑을 벗어던지고 높은 담벼락을 홍길동처럼 뛰어넘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과 경찰이 현상금 1000만원을 내걸고 그의 검거에 총력을 쏟는 이유는 괴력을 소유한 그가 최악의 경우 무고한 시민을 피습할 수 있는 위험인물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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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강도 혐의로 붙잡혔을 당시에는 경찰관을 흉기로 찔러 권총을 쏜 뒤에야 체포가 가능했을 정도였다는 얘기가 떠돈다.
신출귀몰하고 힘까지 센 이대우를 보면서 사람들은 과거 신창원을 떠올리고 있다. ‘제2의 신창원’이라고 불릴 만큼 위험하고 대담하다는 것이다.
이대우와 신창원은 몇 가지 공통점이 포착된다. 둘은 46세로 동갑이다. 전과 12범인 이대우는 복역 당시 신창원과 같은 교도소에 머물렀던 적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창원은 강도치사죄로 복역 중이던 지난 1997년 탈옥했다 907일 만에 검거된 바 있다. 신창원은 부산교도소를 탈옥한 뒤 수차례 경찰과 난투극을 벌이며 도피에 성공했다. 이는 수갑을 차고 탈주해 경찰 검거망을 피해가고 있는 이대우와 닮은꼴 행보다.
그러나 경찰은 이번 이대우 사건이 제2의 신창원 케이스로 확대되는 걸 우려하고 있다. 탈주범 서울 잠입 첩보를 입수하고 서울 및 수도권 전역의 검문검색을 강화하는 배경이다.
한편 ‘서울 잠입 이대우 사건’으로 재조명받는 신창원은 1967년 전북 김제의 한 농가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김제에서 중학교 2학년을 중퇴한 그는 간암으로 투병하던 어머니를 잃고 6년 뒤인 1982년부터 절도죄 등을 저질러 소년원과 교도소를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서울로 상경한 신창원은 음식점 배달원 등을 전전하다 다시 절도를 저질러 징역을 살았다.
신창원은 1989년 3월 서울 성북구 돈암동 골목길에서 동료 4명과 함께 강도 살인(강도치사)을 범한 죄로 그해 9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서울구치소를 거쳐 청송 제2교소도 등 여러 형무소를 옮겨 다니다 1994년 11월 부산교도소로 이감돼 수형생활을 하던 도중 1997년 감방 화장실 환기통 쇠창살을 절단하고 탈옥한 후 모두 5차례에 걸쳐 경찰과 맞닥뜨리고도 유유히 검거망을 벗어나며 2년 6개월 동안 도피 행각을 벌였다.
1999년 충남 천안의 다방 주인 신고로 발각돼 7월 전남 순천에서 검거되기까지 수차례나 사회적 이슈의 중심에 섰다.
신창원은 재검거 이후 22년6개월 형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2011년 자신의 독방에서 고무장갑으로 자살기도를 해 중태에 빠졌으나 회복 후 경북 북부 제1교도소에서 전주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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