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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넘겨받은 정부’..고민 깊어지는 재정정책

김상윤 기자I 2016.06.12 14:56:37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정부의 재정 확대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하반기로 갈수록 경기 부진이 심각해지고, 구조조정에 따른 부작용이 커질 우려가 있는 만큼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포함한 재정 수단을 이용해 정책 공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책연구기관은 물론 국제통화기금(IMF)도 재정 확대를 요구하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오히려 야당 쪽에서 먼저 추경 편성에 협조하겠다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을 확장적으로 편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지만, 거듭된 추경 요구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 “구조조정 추경 요건 맞지 않다”

정부는 추경 가능성을 열어놓으면서도 현재는 추경을 편성할 때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건전재정론자’인 유일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미 수차례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추경 편성은 법적 요건이 맞지 않는다”고 발언하며 부정적 입장을 보여 왔다.

추경 편성 요건은 3가지다. 국가재정법 89조는 △전쟁이나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기 침체, 대량 실업 등 대내외 중대한 변화가 생겼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국가가 지급해야 할 지출이 발생하거나 증가하는 경우로 깐깐하게 한정해 놨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근접한 요건은 두 번째다. 추경 편성이 당장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학계·연구기관·정치권에서는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 실업을 추경 편성 근거로 들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처럼 경기가 가라앉고 있고,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 문제 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추경을 편성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야당에 이어 여당에서도 추경 가능성을 열었다. 김상훈 새누리당 정책위 부의장은 지난 9일 구조조정 당정간담회 이후 “공공부문 일감 증대가 필요하다면 정부 차원의 예산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있었다”며 “이는 필요하다면 추경까지 고려한 의견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3당 입장에 미세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구조조정에 따른 피해 축소에 대해 정치권이 크게 반대할 명분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기재부는 ‘대내외 중대한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다. 아직 수술도 하기 전인데 부작용을 걱정해 미리 약을 쓸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야당에서 실업예산 등 선심성 예산을 지나치게 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한 차원으로도 풀이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추경 편성 가능성에 대한 설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현 시점에서 추경 편성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면서 “현재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은 조선업에 국한되고 있는데다, 중국 경기가 갑자기 꺼지거나 유가가 10달러수준으로 떨어질 가능성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추경 편성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추경 찬성 반대 근거


◇내년 예산 확장적 편성+하반기 재정보강 나오나

정부는 일단 추경 편성보다는 개선된 세수 여건을 바탕으로 내년 예산을 확장적으로 편성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미 예산 편성 단계가 막바지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추경 편성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내년 예산을 확대 편성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하반기 재정절벽과 관련해서는 최소 5조원 규모 이상의 재정보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올해 전체 재정의 60%를 상반기에 당겨쓴 만큼 하반기에 쓸 실탄이 부족한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국전력공사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기업 투자를 늘리거나 지방자치단체들의 추경 편성을 독려하는 식으로 재정보강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로 경기를 떠받치고 구조조정에 따란 경기 하강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지는 기재부 안팎에서도 확신을 못하고 있다. 정부가 올해 ‘추경은 없다’고 선을 긋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 교수는 “공기업 투자나 다른 기금을 갖다 쓸 수도 있지만 규모도 미미하거니와 다른 자금을 갖다 쓰는 터라 부양 효과는 추경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내년 예산을 확장적으로 편성하되, 하반기 구조조정 상황을 지켜보며 내년 예산을 당겨 추경에 반영하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이미 내년에 구조조정 관련 예산을 반영했다면, 예산 편성과 국회 통과 과정이 한달 이내로 대폭 축소돼 자금이 바로 투입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은 “지금은 부작용을 걱정하기보다는 구조조정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면서 “만약 하반기에 대량실업 등 문제가 실제 발생하면 그때 가서 추경 편성을 해도 늦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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