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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out)근본과 말단이 전도된 `공정사회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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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근모 기자I 2010.09.06 11:29:00
[안근모 이데일리 경제부장]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을 외교부에 특별채용한데 대한 최근 여당과 청와대의 일련의 반응을 보면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정사회' 구현론에 어떠한 본질적인 문제가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들이며, 이를 통해 역설적으로 공정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하는지 반면교사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파문을 되짚어 보자. 먼저 지난 3일 아침. '특혜'의혹이 제기된 직후 유명환 장관은 출근길에 기자들에게 "장관 딸이라고 더 엄격하게 한 걸로 보고받았다. 의혹이라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 채용과정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시비를 걸 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유 장관 본인을 포함한 우리나라 지도층의 `엄격함`이 전혀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음은 차치하고라도, '장관의 딸' 나중에는 '장관을 지낸 자의 딸'이 재직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조직내 갖가지 부작용과 문제의 개연성이 유 장관의 머릿속에는 없었다.

청와대의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한 유 장관이 2시간이 채 안돼 입장을 뒤집어 사과문을 발표했는데, 이 때도 유 장관은 "아버지가 수장으로 있는 조직에 채용되는 것이 특혜 의혹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엄격하게 채용했으니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인식의 수준에서 못 벗어난채 '빌미를 제공해 미안하다'는 생각에만 머물러 있다.

한나라당의 인식도 이런 식이었다. 유 장관이 사의를 표명한 뒤인 지난 4일, 안형환 한나라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외밭에서는 신을 고쳐신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 장관 본인에게나, 한나라당에게나 이번 파문은 '오해받을 일'을 해 생긴 분란으로 여겨질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 대통령은 지난 5일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서 "보통때 같으면 오래된 관습이라면 어쩌면 통과될 수 있는 문제인지도 모르지만 공정사회를 기준으로 보면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공정사회'라는 새 규범이 이 사회를 지배하게 됐기 때문에 타이밍이 나쁘고 운수가 사나와서 걸린 시범 케이스가 돼 버린 셈이란 말인가.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새삼 "공정사회는 사회 지도자급, 특히 기득권자가 지켜야 할 기준"이라면서 "아마도 기득권자에게는 매우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주변에서는 이를 두고 대대적인 사정을 예고한 발언으로 해석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500년전의 논의를 들어보자. "이상적인 정치를 이룩하려면 무엇에 힘써야 하는가"라는 조선 중종 임금의 과거시험 책문(策問)에 조광조는 "나라를 다스릴 때 정치의 도(道)를 터득하면 기강과 법도는 저절로 세워진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만약에 정치의 말단에서 기강을 따로 세우고, 법도를 따로 정하려고 한다면, 기강과 법도가 설 리도 없거니와 섰다 하더라도 정치의 원칙을 해칠 것"이라고 답했다. (이하 `소나무`刊 「책문」(김태완 편저)에서 인용)

그렇다면 조광조가 말한 '정치의 도(道)'는 어떻게 터득하는 것인가. 조광조의 답은 이렇다. "정치행위나 법조문을 가지고 기강과 법도를 삼지 마시고, 오묘한 이 마음으로 기강과 법도의 근본을 삼으시라. 그리하여 마음의 바탕이 광명정대해져 천지와 한 마음이 되어 작용하게 하시라. 그렇게 하면 정치가 도에 따라 이뤄질 것이고, 기강과 법도는 세우지 않아도 설 것이다."

조광조는 이를 위해 왕에게 `마음을 다스리는` 두 가지 요체로 '도를 밝히는 것(明道)'과 '홀로 있을 때도 삼가는 것(謹獨)'을 말한다. 남이 보지 않을 때도, 어둡고 은밀한 곳에서도 오로지 본성을 따르는 도(道)를 행하는 솔선수범으로써 정치를 하라는 가르침이다.

말단에 매달려 있는 이 대통령과 청와대, 한나라당은 지금이라도 공정사회란 과연 무엇이고 어떠한 것인지 그 도(道)를 밝히고, 또한 아주 은밀한 곳에서조차 그 도를 삼가 행해야 한다. 뜻을 성실히(意誠)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고(心正), 자신부터 덕을 닦고(修身), 제 집안부터 정돈(齊家)하여야 한다.

조광조의 정치론은 "자신의 근본이 어지러우면 말단이 다스려지지 않으니 자신의 덕을 닦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라"고 하는 「대학(大學)」의 오랜 가르침을 되풀이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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