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꽝 김기자의 1인방송 도전기]9번째 '비장했던 SK 설명회'

김유성 기자I 2015.12.05 14:37:42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등에는 노트북 가방, 옆구리에는 망원렌즈와 카메라, 또 다른 옆구리에는 삼각대. 군장에 방독면을 차고 소총을 든 군인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난 2일 SK텔레콤(017670)CJ헬로비전(037560) 인수 설명회 직전 제 모습입니다.

SK의 CJ헬로비전 인수 발표후 처음 갖는 공식 설명회이기 때문에 의미는 컸습니다. 자신들의 인수 당위성을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면서 여론을 이끌자는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이동통신 1위 업체 SK텔레콤이 케이블TV 1위 업체 CJ헬로비전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점이 의미 있습니다. SK 입장에서는 단순히 경쟁사를 인수하겠다는 범주를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경쟁 구도는 물론 앞으로의 유료방송 시장이 빠르게 변화할 수 있습니다.

또 달리 말하면 모바일이 중심이 되는 앞으로의 미디어 환경에서는 이동통신, 무선 망을 가진 사업자가 유리할 수 밖에 없는데다 무선과 유선 사이 구분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통신 환경이 바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설마설마 했던 일이 이렇게 빨리 도래할 줄은 아무도 몰랐었던 것이죠.

(기자 업계도 점점 펜과 방송의 영역 구분이 모호해질 것이라고 봅니다. 외신에 따르면 카메라 없이 스마트폰만 갖고 리포팅을 하는 방송 기자도 있다고 합니다.)충격이 큰 곳은 케이블TV 업계입니다. CJ헬로비전은 1등 기업 이전에 티브로드와 함께 케이블업계 중심 축이었습니다. ‘결합상품’ 문제나 지상파 방송사와의 재전송료 협상에 있어서 ‘저항의’ 추동력이 됐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1위 기업이 맥없이 ‘적’이었던 IPTV에 인수됐다는 점에서 케이블 업계는 충격이 컸습니다.

KT와 LG유플러스도 ‘아차’ 싶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유선 통신 시장에서 KT의 존재감은 매우 큽니다. 유선 전화는 물론 초고속 인터넷 등에 있어서도 KT의 시장 점유율은 이동통신의 SK텔레콤 이상입니다. 유료방송에 있어서도 시장 점유율 제한 조치를 당할 정도로 KT의 존재감은 컸습니다. 국내 유료방송 가입자 수 기준 KT의 점유율은 29% 가량입니다.

SK텔레콤이,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을 합병해 또다른 강력한 유료방송 사업자로 나선다는 게 KT로선 위협일 수 밖에 없죠. 그러다보니 KT는 분명한 반대 입장이었습니다.

KT가 기업 입장에서는 SK의 CJ헬로비전 합병을 반대할 수 있습니다만 자기 밥그릇 빼앗기기 싫어 반대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사용자 입장에서는 CJ헬로비전이 케이블에 남든, IPTV로 가든 크게 상관할 사항은 아닙니다.

오히려 KT에 이은 SK라는 시장 강자가 생기면서 지상파 방송사 등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지역 케이블 사업자 의견입니다.

이 설명회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다보니 서론이 지나치게 길어졌네요. 짧은 본론에 들어가보겠습니다.

이날 행사의 중요성을 감안해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기로 했습니다. 기사를 보는 즉시 행사장의 얘기를 직접 보고 들을 수 있게 하자는 뜻이죠. 이 행사를 생방송할 방송사는 없을 것이라고 추정되기에 제가 하는 스트리밍이 전국에서는 가장 빠른 설명회 뉴스였을 것입니다.

이날의 주요 준비물로 삼각대와 스마트폰을 준비했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는 스트리밍용으로, 또다른 하나는 전화 용도로 사용키로 했습니다.

망원렌즈와 삼각대. 망원렌즈는 70-200 탐론 렌즈입니다. 삼각대는 예전에 남대문 카메라 상가에서 10만원정도 주고 샀습니다. 두 물건 다 무겁고 휴대하기도 쉽지 않아 가능하면 갖고 나오지 않는 것들입니다.
스트리밍 플랫폼은 유튜브로 하기로 했습니다. 아프리카TV도 생각을 해봤지만, TV를 보는 네티즌들의 의견을 일일이 답변해줄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날 행사장 인물들의 워딩을 치고 기사를 쓰면서 사진까지 찍으려면 너무나 촉박했고 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방송국이 괜히 있는 게 아니죠)

삼각대와 그 위에 설치된 스마트폰은 당일 SK텔레콤 홍보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저야 과거에 여러번 이같은 일을 했다고 하지만 대기업 홍보실 입장에서 이렇게까지 ‘오버’하는 기자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불편했을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실시간으로 나가는 터라 이날 인물들이 말을 잘못하기라도 하면 그대로 노출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흘러간 말을 주워 담을만한 소지가 아예 차단됐다는 얘기입니다.

사실 행사장에서 사장이든 CEO든 높은 사람이 잘못 말했을 경우 홍보실에서 기자들에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보도 자제를 요청할 때가 왕왕 있습니다. 이를 수용하는 것은 기자의 선택이긴 합니다만, 생방송으로 웹에 나간다면 홍보실 입장에서는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두고두고 역사로 남으니까)

게다가 KT나 LG유플러스가 두 눈 똑바로 뜨고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다는 데에 긴장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같은 선례가 없어서 ‘실시간 동영상 찍겠다고 덤벼드는 기자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하나’ 대응책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KT나 LG유플러스 홍보실이 제가 실시간 스트리밍을 하는지 여부나 이를 보고 자신들의 전략 수립에 참조했을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제가 KT 홍보실 직원이었다면 “아, 김 기자 고마워”하고 열혈 시청했겠지만요.

주요 인물로는 이형희 SK텔레콤 MNO 총괄, 이인찬 SK브로드밴드 사장 외 네트워크, 서비스 부문 책임자들이 나왔습니다. SK가 추진하는 인수 합병의 취지와 전망을 얘기했습니다.

저와 팀장은 이들 바로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SK 측 임원들은 제가 세워 놓은 스마트폰을 몇번이나 쳐다봤습니다. ‘저게 뭐지’하는 생각을 했을 수 있습니다.

어느정도 짐작을 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홍보실 직원들이 귀띔을 해줬거나 그렇지 않아도 이상하게 보였을 수 있죠.

(실제 행사 당일 영상)

이날 행사 스트리밍에 대한 소감을 밝히자면, 우선 ‘만족스러웠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스트리밍 하다보니 화면에 걸리적거리는 게 없었습니다. 근거리에서 찍은 영상이다보니 화질도 괜찮았습니다. 그동안은 인물들의 얼굴 윤곽 알아보기도 힘들었습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이날 만큼은 다른 기자들과 비교해 ‘오버’하는 측면에서는 독보적이었습니다. 기사 내용을 떠나. SK텔레콤 출입하는 기자들중에서도 그 누구도 자기 카메라를 들고와 스트리밍까지 하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스트리밍을 했던 게임 업계는 전문지 기자들의 활동 폭이 워낙 넓고 장비도 쟁쟁해서 제가 감히 명함을 못 내밀 정도였습니다. 이 분들은 DSLR로 동영상 촬영하고, 행사 후 담당자 영상 인터뷰까지 합니다. 대단하죠.

통신업계 한 곳만 출입했다면 이곳의 ‘암묵적인’ 룰만 따랐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미디어에 게임업종까지 출입하다보니 다양하게 보고 배우고 접목할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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