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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단 "제값받자"..기업 매각 `여유만만`

산업부 기자I 2004.05.18 11:13:45

채권단 "시간 걸려도 받을 건 받아야"
민노당 약진 뒤 노조경영참여 요구 거세져..매각에도 영향

[edaily 산업부] M&A(인수합병)시장에 매물로 나온 기업들의 매각작업이 지지부진하다. 신속한 채권회수를 가장 우선시 해왔던 채권은행들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 값을 받고 팔겠다는 자세로 돌아선데다, 민노당 약진 이후 급작스럽게 증가하고 있는 노조의 경영참여 요구, 전 사주나 소액주주의 개입 등 다양한 매각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정 연기해도 받을 건 받아야 옛 고합의 석유화학사업부문이 분리돼 출범한 케이피케미칼(064420)은 채권단과 우선협상자 호남석유화학이 지난 13일이던 협상 마감시한을 오는 31일로 연기시켰다. 지난달 한차례 연기에 이어 두번째다. 케이피케미칼 매각작업이 지체되는 이유는 가격을 놓고 줄다리기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호남석유화학은 1차 매각협상에서 제시한 주당 2300원을 고수한 반면 채권단은 최근 실적개선과 시장가격을 반영해 3000원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은 서두르지 않고, 케이피케미칼의 사업성 등을 충분히 고려한 가격을 받아내겠다는 입장이다. 채권단은 우선 다음주 중 호남석유화학측에 수정 가격안을 제시한 뒤 28일쯤 채권단 회의를 열 계획이다. 한편, 케이피케미칼 옛 대주주와 소액주주들이 헐값 매각시비를 일으키며, 정부기관에 진정까지 넣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 "옛 대주주 등이 매각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겠지만, 인수를 추진하는 기업이나 팔아야 하는 채권단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호제지(007190)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태경산업과 채권단간 매각조건 차이로 첫 매각시도가 무산돼 재매각이 추진되고 있는 상태다. 매각주간사인 KDB파트너스측는 "입찰 당시 최종 매각가격이 입찰가격보다 5%이상 낮아서는 안된다는 조항을 MOU(양해각서)에 담아야 한다는 것을 태경산업측에 인지시켰다"며 "그러나 협상과정에서 이같은 5% 조항을 태경산업측이 거부해 결국 MOU를 체결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런 조항 요구는 최근 M&A시장에서 인수희망업체들이 우선협상자 지위를 부여받은 뒤 우월적 위치를 이용해 무리한 요구를 해오고 있다는 은행들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KDB파트너스 관계자 "5% 조항은 예비협상자와의 매각가격 차이에 따른 시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라고 말했다. 태경산업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가 해지됨에 따라 예비협상자인 아람CRC(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와 매각협상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람CRC는 신호제지의 협력업체들로 구성된 컨소시엄이다. KDB파트너스 관계자는 "아람CRC를 접촉한 결과 신호제지 인수의사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혀왔다"며 "예비협상자와 협상할 지 재입찰을 할지 채권단에서 논의후 조만간 결정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이닉스(000660)반도체 비메모리 부문은 채권단이 제 값을 받고 팔겠다고 나선 대표적인 사례다. 하이닉스와 채권단은 그간 비메모리부문인 시스템LSI 사업 매각을 위해 씨티벤처캐피탈과 협상을 진행해왔지만, 최근 반도체 시황이 호조를 보이면서 하이닉스와 채권단쪽에서 먼저 협상 결렬을 선언한 것. 씨티측은 당초 시스템LSI 부분에 대해 5257억원 가량을 제시했지만, 이는 채권단이 자체적으로 평가한 가격에 비해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협상 결렬 이후 씨티측이 인수가격을 대폭 상향한 9250억원으로 다시 제시해, 비메모리 부분 매각 가능성이 다시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우종합기계의 경우는 시장상황 악화에 따라 주가가 크게 떨어져, 애초 정부(자사관리공사)가 예상했던 제값받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측에서 매각일정을 아예 재조정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사내 노조의 매각저지 움직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 매각과정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대우종기 인수제안서 마감은 노조의 입찰참여 문제를 자산관리공사가 입장을 바꾸면서 당초 지난 11일에서 오늘(18일)로 1주일 늦춰진 상태다. 자산관리공사는 당초 대우종기의 생산직 및 사무직사원으로 구성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에 입찰을 허용하지 않을 방침이었지만 민주노동당과 정부의 눈치를 살피다 결국 공대위의 `입찰 연기`에 동의했다. 공대위측은 "입찰허용 조건이 불평등하다"며 전면 재검토을 요구하고 있다. 오는 20일에는 노조측이 매각반대 파업을 예고해 놓은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상황도 상황이지만 무엇보다 최근 시장악화에 따라 대우종기의 주가가 크게 떨어져 인수희망자와 정부간에 가격 줄다리기가 지루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적자금을 한푼이라도 더 회수해야만 하는 정부측과 현실적 시장가치를 반영하려는 인수희망자간 충돌이 예상된다는 것. 대우종기 주가는 지난달 초에 비해 현재 50%이상 떨어졌다. 매각대상지분 57.3%의 가치가 1조 2000여억원에서 6000원대로 감소했다. 이는 정부의 공적자금 회수목표액과 차이가 워낙 큰 수치기 때문에 정부가 매각일정을 다소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또 매각을 그대로 진행한다고 해도 난항 예상된다. 한보철강의 경우 지난해 우선협상대상자의 자금력 부족으로 매각이 몇차례 연기되면서 지금까지 인수주체를 찾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우선협상자인 AK캐피탈은 채권단이 2차례나 기한을 연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결국 매각이 무산됐었다. 채권단은 현재 재매각을 추진하고 있으며, 오는 25일 입찰제안서 마감을 앞두고 포스코-동국제강 컨소시엄, 아이앤아이(INI)스틸-현대하이스코 컨소시엄, 한국철강, 네덜란드 엘엔엠(LNM)컨소시엄, 러시아 에브라즈홀딩즈, 미국 뉴코아-일본 야마토 컨소시엄 등 국내외 굴지의 기업들이 인수의사를 밝히고 있다. 여기에 인수 의향서를 냈다가 탈락했던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일가가 다시 인수에 도전할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형국이다. 정 전 회장측은 "정치적 사건으로 부도를 내기는 했지만 지난 7년간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았으며 한보철강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점 등을 호소할 계획"이라면서 "인수 자금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있는 아랍계 펀드를 통해 4억 5000만 달러를 조성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거세진 노조 입김..인수매력 떨어질까 우려 쌍용차의 경우 노조 입김이 매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사례다. 최근 중국 란싱과 매각협상이 불발에 그친 쌍용차는 채권단이 재매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조측이 해외합작, 해외공장 운영등과 관련한 노사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쌍용차 노조는 사측에 대한 `특별요구안`에서 노사동수로 구성된 해외경영전략위원회를 통한 투자 타당성 여부와 투자금액 결정, 해외공장 설립과 합작의 경우 노조에 사전통보, 노조측 의견수렴 절차를 거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 대우건설, 쌍용건설 등도 매각절차 진행을 앞두고 있지만 시장상황 등 여러가지 이유로 진행은 더딘 편이다. 쌍용건설은 지난해 말 자본잠식 상태를 벗어나고 실적도 크게 개선돼 워크아웃 졸업이 확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최대주주인 자산관리공사(캠코)와 주채권은행인 조흥은행 등 채권단은 연내 워크아웃 졸업 후 매각한다는 원칙에만 합의 했을 뿐 구체적인 논의는 현재 진행중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대우건설은 매각이 순조롭지 않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대우계열사 매각의 최대 관심사인 대우건설은 아직 매각주간사 선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자산관리공사는 당초 5월초 공적자금위원회 매각소위에서 최종 의결을 거쳐 주간사 선정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선정과정의 공정성 등 문제가 제기되자 자산관리공사측은 주간사 평가기준 자체를 변경해달라고 공자위측에 제안한 상태다. 자산관리공사측은 "현재 12개 금융기관과 공동으로 출자전환 주식 공동매각협의회를 구성해 경영권 매각을 전제로 매각을 추진중에 있다"며 "특히 대우건설 매각 주간사 선정은 현재 진행중이며 구체적인 의사결정은 없다"고 말했다. 대우건설의 경우 올해초 워크아웃 졸업 직후만 해도 주가가 5000원대를 기록했지만 현재는 액면가에 못미치고 있어 매각에 애로가 예상된다. 자산관리공사측은 "최근 주가하락은 시장 전반적인 현상"이라면서 "제값을 받고 매각해 공적자금 회수율을 최대한 높인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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