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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K워치)국회의원 리스크

강종구 기자I 2005.06.13 14:41:20
[edaily 강종구기자] 지난해 10월 한국은행에 대한 국회의 국정감사 때 일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의 의식수준을 단적으로 알려준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질문 차례가 된 한나라당 K모 의원이 갑자기 김태동 한은 금융통화위원의 징계를 주장하고 나섰다.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자신과 의견이 대립됐던 그 금통위원을 한은이 왜 벌하지 않느냐고 따진 것. 2003년 11월 6일 방영된 문제의 TV토론의 주제는 최근 다시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부동산 정책과 관련된 것이었다. K의원은 부동산 보유에 대한 과세를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김태동 위원은 보유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서로 맞서는 구도였다. 논쟁끝에는 김 위원이 "한나라당은 왜 가진자를 옹호하느냐"고 면박을 주기도 한 모양이다. K의원은 1년 가까이 지난 일을 굳이 끄집어 내 국감장을 자신의 한풀이장소로 만들었다. 당시 김위원의 발언은 특정정당을 편든 것이고 자신의 명예가 실추됐으며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쳤다며 "한은 자체적으로 주의를 주지 않는 이유가 뭐냐"고 따졌다. K의원의 발언수위는 선을 넘어서고 말았다. "(김위원의) 금통위원으로서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금통위원에 대해 한은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유감스럽다"고 하더니 "김태동 위원이 제대로 활동하는지 알고 싶다"며 관련자료 일체를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심지어 한은이 난색을 표하자 "무슨 이유가 많으냐"며 화를 냈다. 지난 2월말 한은이 국회 업무보고 자료에 외환보유액의 통화다변화를 명시해 국제 외환시장에서 달러가치가 급락했던 이른바 `한국은행(BOK) 쇼크`. 2000억달러를 넘어서며 과다보유 논란이 들끓고 이에 대한 대안중 하나로 한국투자공사(KIC) 설립이 준비되던 상황에서 "통화다변화" 표현이 보고서에 들어간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 더구나 `통화다변화`는 이때뿐 아니라 그 전해에도 보고서에 들어가 있었고 심지어 국회 재경위는 직전주에 금융소위를 열어 비공개로 훨씬 더 자세한 설명을 들은 뒤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의원들은 외환보유액의 통화다변화가 왜 필요한지, 그와 관련해 앞으로 통화정책이나 외환정책이 어떻게 영향을 받을지 묻는 이가 거의 없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왜 쓸데없이 보고서에 그런 문구를 적어 세상을 시끄럽게 하느냐" 일색이었다. 더 황당한 것은 직전주 금융소위 보고를 철저히 비공개로 하겠다는 약속을 깨고 보고서를 유출해 기자들에게 유포한 것도 국회의원들이었다는 것이다. 회수를 전제로 배포됐던 20부의 보고서중 한은 손에 다시 돌아온 것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국회 업무보고나 국정감사때만 되면 국회의원들은 엄청난 자료를 한은에 제출하도록 요구한다. 그런데 그중 대부분은 한은 사이트에 접속하는 간단한 노력만 있으면 바로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언론을 통해 수차례에서 수십차례 자세하게 보도된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평소엔 한은이나 한은의 통화정책, 환율정책 등에 대해 관심이 없단 얘기다. 질문 내용을 보면 우리 국회의원들은 경제와 통화정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물론이고 한은이 무엇을 하는 곳이고, 역할과 기능은 어디까지인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정부가 목표로 삼고 있는 성장률 달성이 안되면 한은에 덮어씌우기 일쑤다. 성장률은 한은의 목표가 아니며 한은은 단지 경제의 장기안정 성장을 도모하는 위치에서 예측을 할 뿐이다. 의원들은 스스로 한국은행에 금리를 올리라거나 내리라고 명령할 권한이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하기도 한다. 여당의원들은 "경제가 어려운데 왜 금리를 더 안내리느냐"고 추궁하고 야당의원들은 "금리를 자꾸 내리니까 부동산값이 폭등하는 것 아니냐"며 야단을 친다. 13일 다시 찾아온 한은의 국회업무보고. 이날의 화두는 단연 열린우리당 의원 몇명이 제기한 박승총재 사임론이다. 한은은 발칵 뒤집혀 각 의원실을 찾아다니며 잘 봐달라고 애걸 복걸이다. 이들이 대표적으로 문제삼는 박총재의 잘못은 `가벼운 입`이다. 지난달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와의 인터뷰에서 "외환보유액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발언이 말초사가 돼 한은이 외환시장에 1조원을 긴급 투입해야 했던 일은 피할 수 없는 사임이유라는 지적이다. 경제전망치가 자주 바뀌고 최근 주택담보대출 비율을 축소할 수도 있다고 한 말도 박총재가 사임해야 하는 이유로 들고 있다. 의원들의 말처럼 박총재가 그동안 `말`때문에 구설수에 오른 적은 한 두번이 아니다. 박 총재 말 한마디에 금리가 급등하거나 환율이 급락하는 일이 여러번 있었다. 박 총재가 그동안 잘못된 말을 해 왔는지, 입이 정말 가벼운 것인지, 입이 가벼워 물러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수없이 많은 주장이 있을 수 있다.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국회의원들의 박총재 사임론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법(한국은행법)에 명시한 한은 총재의 임기보장을 흔드는 것일 뿐 아니라 통화정책의 신뢰성과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도전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은은 정치권의 외풍에 바람 잘 날이 없다. 한은이 시장에 메시지를 줘도 마치 지나가던 개가 짖는구나` 식으로 반응하는 가장 큰 이유도 어쩌면 정부와 정치권의 과도한 간섭 때문 아닐까. 한은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는 사실상 정부가 인선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전국은행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등 외부기관의 추천을 받는 형식을 갖지만 실제로는 정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금통위가 열릴 때면 예외없이 정부에서 `저금리 필요론`이 흘러 나온다. 최근에는 부동산에 대해 한은이 별도의 대책을 쓸수도 있다고 하니까 곧바로 경제부총리가 "특정지역 대출제한 있을 수 없다. 부동산 문제에 금리인상으로 대응할 수 없다"고 못을 박고 나선다. 국회의원들은 부동산 거품을 박총재가 경고하고 나선 것이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한다. 외신에 외환정책 운용에 대한 언급을 한 것이 실언이니 그만 두라 한다. 한은과 한은총재가 시장에 메시지를 주는 것은 필수다. 그것은 발표문이 될 수도 있고, 보고서가 될 수도 있으며 한은 총재의 입을 통할 수도 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경고가 나와 시장이 들썩거릴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단지 시장이 크게 흔들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한은의 행위를 비난할 수는 없다. 국회의원들은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특종`을 위해 한은에 별별 자료를 다 요구한다. 심지어 외환보유액의 자세한 자산내역까지도 받아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관심 있는 것은 "뭔가 크게 터뜨릴 일이 없을까"이다. 의원들의 `특종의식`은 기자의 그것을 능가하고도 남는다. 한은과 박승총재의 위상이 바닥에 떨어진 절반의 책임이 한은과 박승총재에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의 책임에서 정부나 국회의원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이 만든 법으로 임기를 보장한 한은 총재의 사임을 요구하는 것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을 떠나 주제파악을 못하는 행위다.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집단적으로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당정의 경제정책 실패를 한은에 덮어 씌우려는 수작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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