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금융의 꿈★)⑨불모지서 캔 다이아몬드 은행

좌동욱 기자I 2009.11.26 10:59:38

금융위기때 자산 30% 성장..뱅크런예금 대거 흡수
KB 인수로 평판 `업그레이드`...리스크 관리 강화
금융위기에 강한 은행 M&A...21년 연속 흑자 행진

[카자흐스탄 알마티=이데일리 좌동욱기자] 카자흐스탄 알마티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파이낸셜 디스트릭트(Financial District). 알마티시를 중앙아시아 최대 금융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뉴욕 맨하탄 월스트리트가를 본따 조성하는 복합 금융센터 부지다.

남쪽으로 중앙아시아의 알프스라 불리는 톈산산맥이 자리잡고 있고, 정면에는 알마티 신시가지를 상징하는 누를리 타우(Nurly Tau·빛의 산) 빌딩이 보인다. 서쪽으로는 43층 높이의 메리어트 레지던스 타워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건물들은 공사가 현재 진행 중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 때문이다. 알마티 시내에서는 공사가 중단되거나 중단한 경험이 있는 건축물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아르켄 아리스타노프(Arken Arystanov) 알마티 지역금융센터(RFCA) 위원장(장관급)은 "카자흐스탄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 여파로 2007년 하반기부터 금융위기가 시작됐다"며 "금융위기가 글로벌 위기보다 1년 먼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이로인해 카자흐스탄 경제 성장을 떠받치는 3대 축인 자원, 금융, 건설산업 중 금융과 건설 산업이 무너졌다. 2000년 이후 매년 9~10%씩 성장하던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2008년 3.2%로 뚝 떨어진 후 2009년 상반기 마이너스로 돌아섰다.(그래프 참조)

◇ 국민은행 BCC, 금융위기때 자산 30% 성장 

국민은행은 금융위기가 전방위로 확산되던 2008년초 현지은행 BCC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국민은행이 BCC 경영에 참여한 후 1년간 BCC는 위기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결과를 보면 놀랍기 그지 없다. BCC의 총자산은 2008년 3월 8470억 팅게(카자흐스탄 화폐, 1달러=150.43 팅게)에서 2009년 9월 1조1016억 팅게로 30% 가량 늘었다. 이 기간 BCC는 자산 기준 은행권 순위가 6위에서 5위로 올라갔다.(그래프 참조)
 
은행의 자산 건정성을 따져보면 그 변화는 더욱 드라마틱하다. BCC의 90일 이상 연체대출금 비율(부실채권비율)은 2008년 9월말 2.24%에서 2009년 9월 4.74%로 2.5%포인트 높아졌다.
 
하지만 이는 1~4위 은행 평균 부실채권비율 15%의 3분의 1수준이다. 같은기간 다른 대형 은행들의 부실채권비율은 10%포인트 가량 급등했다. 2008년 당시 4위 은행이었던 알리안스 뱅크는 부실채권비율이 10.38%에서 56.72%로 무려 40%포인트 이상 높아졌다.(아래 그래프 참조)

티무르 이시무라토프 BCC 국제본부장은 "카자흐스탄 대형 시중은행들이 대규모 해외 차입으로 자산 불리기 경쟁을 하다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차입금을 회수하자 은행들이 위기를 맞았다"고 설명했다. 
 
◇ BCC로 흡수된 `뱅크런` 예금

카자흐스탄 1위 은행인 BTA와 4위 은행인 알리안스뱅크는 올해 초 모든 채무에 대해 디폴트(지급불능)를 선언했다. 현재 채권단과 채무재조정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당시 BTA의 해외차입금 규모만 120억달러에 육박했다고 한다. 
이런 은행들에서 고객들이 돈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고, 급기야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까지 터졌다. 말리크 누그마노프 BCC 알마티 지역본부장은 "BTA의 겨우 한달간 30억달러의 예금이 빠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BCC는 올해 들어서만 개인예금이 35%, 법인예금은 50% 증가했다. BTA와 알리안스 뱅크에서 빠진 예금이 대부분 BCC와 같은 외국계 대주주가 있는 은행으로 들어왔다. 이 같은 BCC의 예금 증가속도는 현지 언론과 금융가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고 누그마노프 지역본부장은 전했다.
 
◇ 국민은행 인수로 평판 `업그레이드`

BCC가 위기에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원인은 뭘까. 새로운 대주주인 국민은행의 역할일까, 아니면 원래부터 BCC가 위기에 강한 은행이었을까.

▲ 티무르 이시무라토프 BCC 국제본부장
BCC측은 새로운 대주주의 역할을 인정했다. 이시무라토프 국제본부장은 "한국계 대주주가 새로 들어오면서 글로벌 은행이라는 BCC 이미지가 부각됐고, 믿을 수 있는 은행이라는 평판(레퓨테이션)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측 요구로 BCC 여신에 대한 신용평가와 리스크관리 시스템도 더욱 정교해졌다. 국민은행은 BCC에 최동수 상임이사(前 국민은행 부행장)와 최고재무책임자(CFO), 리스크담당 부행장을 파견하고 있다.

BCC CFO인 윤재관 부행장은 "예금이 단기간에 급하게 늘어나도 자금 운용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는 오히려 예금을 가려서 받거나 대출금리를 인하하는 방안 등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 위기에 강한 현지은행 선택 

하지만 BCC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BCC 자체의 보수적인 은행 경영전략이라고 현지인들은 평가한다.

카자흐스탄 은행권이 위기를 겪게 된 근본 원인은 단기로 해외에서 자금을 빌려 카자흐스탄 내에서 장기로 자금을 운용했기 때문이다. 디폴트를 선언한 BTA와 알리안스 뱅크는 해외 차입금이 전체 차입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60%에 달한다. 반면 BCC의 해외 차입금 비중은 28% 정도다.

특히 외화 차입금 중 3년 이상 장기 외채 비중이 80%를 넘는다. 당장 해외로 빼낼 수 있는 여유자금도 20억달러를 갖고 있다. 대출 구조를 따져봐도 가계대출이 40%, 중소기업 비중이 40%로 대형 건설업체에 주로 자금을 빌려줬던 다른 시중은행들과 차이가 있다.

누그마노프 지역 본부장은 "BCC는 설립 후 21년간 한번도 손실을 낸 적이 없는 은행"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이시무라토프 국제본부장도 "국민은행이 대주주가 아니었다고 해도 BCC는 금융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국민은행이 잘한 점은 카자흐스탄에서 좋은 은행을 잘 선택해 인수·합병(M&A)에 나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카자흐스탄내 최고 경영대학인 키맵대의 이상훈 경영대학장은 "금융위기 이후 BCC는 카자흐스탄에서 다이아몬드 은행으로 평가되고 있다"며 "국민은행의 투자로 BCC 퀄러티(질)가 더 좋아지게 되면 앞으로도 더 큰 투자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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