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상장 대기업의 이사회 소집권한은 관행상 경영 실무를 총괄하는 대표이사나 이사회의 의장에게 주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다만 상법에서는 회사의 정관에서 이사회 소집권한을 누구에게 부여할지 명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정관에서 소집권자를 회장, 부회장, 또는 특정 이사로 규정할 수도 있고 이런 경우 정관에 따라 권한이 행사된다.
고려아연은 이 정관 규정에 따라 MBK·영풍 연합이 이사회 과반 이상의 의석수를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이사회 소집은 최 회장에 달려있어 이사회 장악이 쉽지 않은 구조다.
더욱이 정관 변경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항에 해당하는데, MBK·영풍 연합은 아직 의결권 기준으로 특별결의안을 통과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특별결의안 통과를 위해서는 출석한 주주의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의 수와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수로 해야 한다. MBK·영풍은 이를 충족할 만한 지분이 부족한 상황이다.
사내이사로 등록된 최 회장의 해임안 역시 특별결의 사항으로, 2026년 3월까지 임기가 남은 최윤범 회장을 밀어내긴 어렵다. 최 회장은 지난 3월 20일 임기 만료로 대표이사직을 사퇴했지만 사내이사로 남아 이사회 의장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상법 제390조에 따라 이사회 소집권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이사회 소집을 거부하는 경우 다른 이사가 이사회를 소집할 수 있다. 그러나 정당한 이유를 들어서 거부하는 경우 다른 이사나 감사가 소집해 이사회를 결의하더라도 효력에 문제가 될 수 있다.
고려아연은 이번 MBK·영풍의 경영권 인수가 불법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이사회 소집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을 두고 양측의 법적 공방이 이어질 수 있다. 이 경우 이사회는 즉각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경영 공백 상태에 빠질 수 있어 MBK 연합은 실질적인 경영권 행사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MBK·영풍 연합이 높은 지분율을 확보하더라도 고려아연의 정관상 제약으로 인해 최윤범 회장과의 불편한 동거는 당분간 불가피하다”며 “이번 경영권 분쟁은 고려아연과 영풍이 경영과 소유를 분리해왔던 독특한 소유지배구조에서 근본적으로 비롯된 문제인 만큼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