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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태종의 변화를 ‘승부’라고 표현했다. 그는 “그 승부가 창업을 끝내고 수성의 시기를 열었다”며 “그 바탕 위에서 세종의 시대를 맞이했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이런 태종의 모습을 ‘주자주의’(박 교수는 ‘성리학’ 대신 주자주의로 표현했다)를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태종은 무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과거에 급제한 인물이다. 당대 상류층이 공유하던 주자주의의 이념에 접근해 문무를 겸비한 인물이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는 태종이 정적인 정도전을 제거한 뒤 그의 조선설계도인 ‘조선경국전’을 계승한 것도 이런 정치철학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태종은 권력의 화신인 동시에 이념의 세계(주자주의)에 대해 누구보다도 가까이 접근하고 공감했던 사람”이라며 “초창기 조선 왕조의 창업 혼란기를 종결시켰다. 그 과정에서 조선 왕조의 중요한 업적인 유교적 국가건설의 제도화 작업을 해냈다”고 말했다.
박 교수의 이번 저서는 미묘한 시점에 출간돼 이목을 끌었다. 대선을 앞두고 ‘야누스’적 모습을 보인 태종을 선보였다. 세종이 아닌 태종을 선택하면서 대선 승리 경쟁(권력 장악 시도)을 펼치는 현재의 상황이 초기 태종의 모습과 흡사한 결과를 낳았다. 이에 박 교수는 대선 후보들에게 권력을 장악한 이후의 태종의 모습을 참고하라고 조언을 건넸다.
그는 “오늘날 (정치는)권력을 장악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소비하고 장악 후에는 번아웃(무기력증)한다”며 “대선 승리가 중요하겠지만, 승리하고 난 뒤에 무엇으로 승부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 승부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