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안재만 기자] 현대건설 인수전에 `올인`해도 모자랄 현대그룹에 또 다시 골치아픈 일이 터질 조짐이 엿보이고 있다. 현대그룹에 우호적인 걸로 알려진 스위스의 쉰들러그룹이 현대엘리베이(017800)터 지분을 대거 매집하면서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제기된 것.
쉰들러그룹은 지난 24일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13만3094주(1.87%)를 추가 장내매수, 총 보유주식이 351만5371주(35.27%)로 늘었다고 공시했다. 이는 단일주주로는 최대 규모.
쉰들러그룹은 투자목적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면서도 "한국의 엘리베이터시장에 관심이 지대하고, 현대엘리베이터와 제휴관계를 발전시켜나가기 위해 경영진과 긴밀히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듣는 이에 따라선 `경영권 참여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문구다.
◇ 힘으로 뺐는 건 불가능..현 회장측 과반수넘게 확보
물론 현재로서는 쉰들러그룹이 `힘으로` 현대엘리베이터를 빼앗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 최대주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현대로지엠 등이 보유한 지분이 50%를 웃돌기 때문.
현대그룹이 공식적으로 쉰들러그룹 지분 확대를 경계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룹측 한 관계자는 "이미 50.5%에 달하는만큼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면서 "아무래도 현대건설 인수전같이 중요한 이슈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대엘리베이터가 유상증자 중인데 만약 쉰들러 그룹이 전략 청약한다해도 지분율은 조금 떨어질 것"이라며 "실권주가 발생할 경우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은 더욱 공고해진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유상증자가 완료되면 최대주주, 혹은 현대그룹에 우호적인 투자자의 지분율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최근 현대엘리베이터가 경영권 분쟁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단기 급등한만큼 실권주가 발생할 여지 또한 높다.
장내매수로 쉰들러그룹이 지분을 늘릴 여력도 많지 않다. 이미 현대그룹과 쉰들러그룹이 90%에 가까운 지분을 들고 있어 유통주식수가 많지 않은 상황. 쉰들러그룹이 장내에서 지분을 대폭 늘리긴 부담스러운 상태다.
◇ 이사선임 요구 가능성은 있어
다만 쉰들러그룹이 이사 선임 등을 요구할 가능성은 적지 않다.
현재 현대엘리베이터는 집중투표제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기업이 2인 이상의 이사를 선출할때 득표를 많이 한 순서대로 이사를 선출하는 이 제도는 소액주주들의 경영참여폭을 넓히기 위해 지난 1999년 도입됐다.
집중투표제는 자동으로 도입되는 제도지만, 현대엘리베이터는 정관에 이를 배제하는 조항을 만들어둔 상태.
하지만 쉰들러그룹 정도의 지분율이면 어느 정도는 이사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란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물갈이`할 정도는 안되지만, 최소한 `딴지`는 걸 수 있을 거라는 것.
한 M&A업계 관계자는 "쉰들러측이 어느 정도의 요구사항은 내놓을 것"이라며 "그렇지 않다면 주가가 단기급등해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지분을 늘릴 필요가 있었겠나 싶다"고 말했다.
◇ 쉰들러 속내는?..현대엘리 "우호적 관계 맞다"
현재 언론 및 증권가에서 쉰들러그룹을 현대그룹에 `우호적인 관계`라고 하는 이유는 지난 2007년 쉰들러그룹의 알프레드 회장이 직접 "우리는 현대그룹에 우호적"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당시 KCC로부터 지분을 넘겨받은 쉰들러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에 욕심내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자 회장이 직접 해명하겠다면서 기자회견을 열었었다.
그런데 이는 벌써 3년전 얘기다. 쉰들러그룹의 입장이 바뀔 여지는 분명히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우호적 투자자라고 했었지만 실제로는 미미한 관계"라며 "쉰들러그룹이 갑자기 `한국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싶으니 엘리베이터사업 부문을 달라`고 요구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에 현대엘리베이터측은 억측이라는 입장이다.
회사측 관계자는 "쉰들러그룹과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고 있고, 수시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면서 "말로만 우호적 관계라는 지적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제휴 관계인지는 주변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말하지 않겠다는 것이 회사측 입장"이라면서도 "쉰들러그룹이 갑자기 경영권을 욕심낼리는 없을 것이란게 현장의 분위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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