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법치주의를 흔드는 ‘사법 테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선 불신이 팽배한 법조계 스스로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현실적으로는 법조인들에 대한 보복 범죄에 대해 더욱 강도높은 처벌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
지난 9일 발생한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은 용의자 천모(53)씨가 미리 흉기와 방화에 사용할 인화물질을 준비한 상태에서 저지른 계획 범행으로 드러나 세간의 충격을 주고 있다. 천씨는 지난해 6월 재개발 아파트 투자금 반환 소송 패소에 이어 방화 1시간전에도 다른 재판에서 패소하며 불만이 극에 달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날 방화로 천씨를 포함, 소송 상대방인 김모 변호사와 박모 사무장 등 7명이 사망했다. 경찰은 범행 현장에 11cm 길이 칼 1점과 혈흔을 발견하면서 김모 변호사와 박모 사무장에 대한 범행도구로 쓰였을 것으로 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다.
사건 직후 대한변호사협회는 성명을 내고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변호사들의 안전을 담보하는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한국법조인협회도 다음날 성명을 통해 “사건 관련자 바로 옆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변호사는 크고 작은 폭언과 협박에 노출돼 있어 그것이 실제 위해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있었다”며 변호사에 대한 위해행위를 엄중 처벌하는 법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실 판결이나 사건 처리 결과에 앙심을 품은 이들이 법조인을 상대로 한 ‘테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7년 8월 한 정신병력자가 수원지법 성남지원장실에 난입해 지원장의 팔 등을 흉기로 수차례 찌른 사건이 대표적이다. 피의자는 친일파 이완용의 후손이 재산권 소송에서 승리하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면을 받을 것으로 알려지자 불만을 품고 이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지원장은 충격에 법복을 벗었다.
영화 ‘부러진 화살’로 알려진 ‘판사 석궁테러’도 세간의 이목을 끈 사건이다. 2007년 1월 동료교수 비방 등을 이유로 교수 재임용에 탈락해 복직 소송을 제기한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는 1심에 이어 항소심에도 패하자 판결을 내린 박홍우 당시 서울고법 민사2부 부장판사의 집을 찾아가 석궁을 쐈다. 김 전 교수는 상해 등 혐의로 징역 4년형을 받고 지난 2011년 1월 만기출소했다.
2008년 광주지검에서는 사건 처리에 반발한 민원인이 공구로 부장검사를 공격한 사건도 발생했다. 이 일로 인해 청사 안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됐다. 2012년에는 지자체를 상대로 토지보상금을 청구한 한모씨가 재판결과에 불만을 품고 서울 도봉구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해당 변호사와 사무장, 여직원을 감금한 혐의로 실형을 받았다.
2014년에는 민사소송 결과에 불만을 품은 60대 의뢰인이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에 불을 질렀다. 2015년에는 ‘전관예우 때문에 피해를 봤다’며 60대 건설업자가 고검장 출신인 박영수 변호사(전 특별검사)에게 흉기로 목에 상처를 입혀 박 변호사는 봉합수술을 받았다.
◇보호장치·인식 개선 ‘한 목소리’…“사법제도 불신도 해소해야”
이번 대구 참사처럼 변호사를 겨냥한 보복성 범죄가 수면위로 드러나면서 일선 변호사들 사이에선 회의감과 공포심이 확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대구 방화 사건이 남일이 아니라 생각하니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됐다”면서 “현실적으로 이를 피할 방안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판결 불복에 대한 분노가 1차적으로 변호사에게 향하고 있다는 현실적 두려움이 생긴다”고 토로했다. 일부 로펌에서는 사무실 출입 시 보안문제, 내부 CCTV 등에 대한 재검검에 나선 상태다.
법조계에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법 테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병욱 서울변회 인권이사는 “이번 참사의 근본적 원인은 법조계에 대한 사회적 불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보복범죄에 노출돼 있는 변호사 등 법조인들에 대한 협박·위해에 대해선 더욱 엄중 처벌하는 법률 제정을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