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철응 기자] 경제와 금융시장, 정치 상황 등을 감안할 때 앞으로 집값 하락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가계부채가 900조원에 육박하면서 금융권이 대출을 죄고 있으며 금융시장 불안으로 시중 자금이 경색되는 분위기다.
집 가진 빈곤층, `하우스 푸어(house poor)`들이 더 이상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너도나도 집을 팔겠다고 나서면 가격 폭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우호적이던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1년여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도 집값 하락에 대한 불확실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 대출 막히면 집 살 사람 사라져
24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가구당 월 평균 이자비용은 7만4083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7%나 증가했다. 사상 최대치다. 가계부채는 876조3000억원으로 900조원을 바라보고 있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대책 마련에 다급해졌고 일부 시중은행들은 가계 대출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대출이 막히면 집 살 사람은 더욱 줄어들게 된다. 국민은행이 지난해 산출한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을 보면 서울지역 평균 집값은 4억4646만원으로 중간 소득(연 3830만원)의 11.7배에 달한다.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저축해도 12년 가까이 걸리고, 3분의 1을 저축한다고 하면 35년이 걸리는 셈이다. 상속 등 다른 자금이 아니고서는 대출 없이 집을 사기는 요원한 일이다.
◇ `하우스푸어` 못 견디면 대량 매물
주가 하락도 부동산 시장에는 부정적이다. 주식 시장으로 가던 돈이 수익형 부동산으로 옮겨갈 것이란 분석도 일부 있지만 시중 자금이 얼어붙으면서 부동산 시장도 타격을 받는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방증이다.
이처럼 매수 주체가 사라진 가운데 당장 집을 처분해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가격 추락은 불가피한 일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무리하게 대출을 해 집을 샀던 `하우스 푸어`들이 대표적이다.
홍종학 경원대 교수는 "하우스 푸어들이 간신히 이자 내면서 버티고 있는데 집값 상승 기대를 포기하게 되면 매물이 쏟아질 수 있다"면서 "금융권 연체율이 높아질 것이며 일본식 장기 침체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우스 푸어`들이 집을 사는데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건설업체 CEO 출신 대통령이니 만큼 어느 정도 집값이 오를 것이란 계산을 했던 것이다.
◇ MB 레임덕과 집값의 함수 주목
하지만 기대와 달리 집값은 오르지 않았고 이제 레임덕 얘기가 나올만큼 이명박 정부는 저물어가고 있다. 홍 교수는 "그동안 정부 내에서 국토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부동산 경기를 떠받쳐왔는데,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면서 "쓸 수 있는 대책이 마땅치 않고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불 끄느라 바쁘기 때문에 집값을 관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세계 경제 위기가 어떤 식으로 귀결될 지가 관심사다. 경우에 따라 집값 폭락의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만약 세계 경제 위기가 우리나라 중산층의 일자리에 영향을 미쳐 소득 흐름이 끊기면 대거 주택 매물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베이비 부머`(baby boomer)의 은퇴가 집값을 붙잡는 주요 변수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기준 은퇴한 빈곤층이 100만가구에 달하고 이들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다.
은퇴 세대는 갈수록 늘어난다. 우리나라의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는 712만명에 달하며 이미 지난해부터 은퇴가 시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이 노후를 위해 내놓는 주택 물량은 가격 하락으로 이끄는 구조적 조건이 되는 셈이다.
홍종학 교수는 "베이비부머의 은퇴는 경제 전반을 장기 침체로 가져가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집값이 떨어졌어야 했는데 정부가 각종 대책으로 이를 떠받쳤다. 이제 집값은 내려갈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