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치러질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이 시작됐다.
|
|
◇‘공정’ 바라는 국민들…법조인 ‘약진’ 주목
29일 정치권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여·야당은 각각 당 차기 대선 후보를 뽑기 위한 경선에 잰걸음을 하고 있는 가운데, 여·야 가릴 것 없이 법조인 출신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여러 대선 주자 선호도 여론조사 결과 여당에서는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등이 꼽히는데, 이 중 이 지사와 추 전 장관이 법조인 출신이다. 이 지사는 제28회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사법연수원을 18기로 수료한 뒤 노동·인권변호사로 활동한 바 있으며, 추 전 장관의 경우 제24회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사법연수원을 14기로 수료해 판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이 전 대표는 법조인 출신은 아니지만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법학도이기도 하다.
국민의힘을 포함한 범야권에서는 유독 검사 출신이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대표적으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제33회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사법연수원을 23기로 수료한 뒤 ‘칼잡이’ 검사로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제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맞대결을 펼쳤던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 역시 검사 출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제24회 사법시험을 통과한 그는 사법연수원을 14기로 수료한 뒤 검사로 근무했다. 이외에도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대표와 원희룡 제주지사 역시 각각 사법연수원 13기, 24기로 수료한 검사 출신 정치인이기다.
판사 출신 야권 대선 후보도 주목을 받고 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제23회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사법연수원을 13기로 수료한 뒤 판사를 지낸 법조인이다.
다수의 법조인 출신이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배경에는 ‘법치와 공정’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그만큼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에 기존의 전문 정치인 중심의 우리나라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더해지면서, ‘법조인 출신의 외부 인사’가 이번 대선의 흐름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다.
고검장 출신 김경수 변호사는 “시대에 따라 중심이 되는 정치적 이슈가 변화하는 것에 맞춰 국민들이 대선 후보에 요구하는 기준 역시 달라지고 있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초기에 독립투사들이 정치권에 활발하게 진출했다면, 6·25 한국전쟁 이후에는 군(軍) 출신들이 여럿 대통령을 하지 않았나. 이후 경제가 중요할 때 경제인이 대통령을 하기도 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안정을 추구하면서도 공정이 핵심 화두로 떠오른 만큼, 법치주의를 실현할 법조인에 주목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 전문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적 혐오가 큰 만큼 외부 법조인들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보다 구체적으로 “과거 소위 ‘삼김(三金)정치’ 시대에는 주로 전문 정치인들이 대선에 출마했다면, 최근에는 전문 정치인 그룹이 약화되면서 대중 정치 형태가 구현되는 모습”이라며 “최근 우리 사회 운영 기준을 법으로 삼는 소위 ‘법화(法化)’가 이뤄지고 있으며, 특히 검찰이나 감사원 등 권력 기관에 대한 견제 등이 핵심 의제로 등장할 만큼 ‘법’이 중요한 사회가 됐기 때문”이라고 봤다.
◇“법조인 정치 진출은 세계적 흐름…다만 검증 철저해야”
법조계에선 법조인들의 대선 도전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활발한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입법을 전제로 하며 대통령의 국가 운영 역시 법에 따라 이뤄진다는 측면에서, 전세계 주요 국가들에서 법을 전공한 이들의 정치 진출 사례는 아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미국은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모두 로스쿨 출신이다.
다만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데엔 법조계 안팎의 이견이 없다.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는 “판사와 검사 등 법조인들은 ‘일도양단(一刀兩斷·한칼로 쳐서 두 동강이를 낸다는 뜻)’식 업무에 익숙한 이들이다 보니 타협과 협상, 토론이 공존하고 때로는 양보도 해야 하는 정치인으로서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한상희 교수는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은)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곧장 법으로 해결하려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협상하고 타협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민주적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행여 국민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법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이른바 사법관들이 사회를 지배하는 아주 안 좋은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이는 우리가 말하는 법치(Rule of law)가 아닌 ‘법에 의한 통치(Rule by law)’ 조짐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하게 경계했다. 법치는 통치자 역시 법에 따라야 한다는 의미이지만, ‘법에 의한 통치’는 법이 통치자의 통치 수단에 불과하게 된다는 의미다.
민주적 리더십이 채 검증되지 않은 외부 법조인들의 대거 영입은, 반대로 현재 우리나라의 취약한 정당정치 현실을 드러낸 것이란 문제 제기도 나온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근무한 헌법 전문가 노희범 변호사는 “정당정치는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으로, 청년 시절부터 정치에 입문해 정당에서 성장하고 경쟁하며 자질에 대한 검증을 받고 대선 후보로도 거론되는 정당정치가 뿌리 내려야 한다”며 “이 같은 정치적 검증을 채 받지 못한 인물들이 대선 후보로 각 당에 영입되고 있는 것은 반대로 그만큼 정당 내 인재가 부족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각 정당들은 엄청난 국고보조금을 받고 있는데, 이를 현역 정치인들의 출세나 자기 자리 보존에 쓸 것이 아니라 스웨덴과 같이 유능한 정치 인재들을 발굴하는 데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