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을 `어떻게` 민영화해야 되느냐는 질문에 윤석헌 교수(62·사진)는 별로 머뭇거리지도 않고 이렇게 답했다.
우리은행 문제로 밤을 새워 고민을 하고 있을법 한 정부에서 들으면 좀 서운해할만한 대답이다. 딸을 시집 보내려는 부모한테 아무한테나 일단 시집을 보내놓고 생각하라는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을까. 그러나 윤 교수는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시종일관 `우리은행은 고민하지 말고 빨리 파는 게 답`이라는 소신을 거듭 피력했다.
◇ "우리은행 오래 들고 있으면 안돼..일단 빨리 파는 게 답"
- 우리금융을 어디에 파는 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면 그럼 정부가 뭘 고민해야 하는 겁니까
▲먼저 정부의 역할을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를 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은행이 정부소유니까 민영화는 당연히 정부의 몫이지만 대형화 여부는 은행의 중장기 전략과 연관되는 것이어서 반드시 정부가 결정해야 할 문제는 아닙니다.
정부가 우리은행의 주인이니까 그걸 (경영권 프리미엄을 붙여서) 비싸게 팔겠다면 할 말은 없지만 구매자를 찾는 과정이 지연되면서 코스트가 발생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 은행의 대형화가 필요하긴 하다고 보십니까
▲반드시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경기가 좋을 때는 대형은행의 수익성이 좋겠지만 경기가 나쁠 때도 겪어봐야 (은행의 대형화가 좋은 것인지 여부를) 전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대체로 대형은행들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긴 기간을 보면 규모가 큰 것이 반드시 좋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 그럼 은행이 규모가 큰 게 오히려 나쁘다고 보시는 겁니까
▲보는 시각에 따라서 나쁠 수도 있습니다. 대마불사, 도덕적 해이 이런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저는 대형화 문제를 보는 두 가지 시각, 즉 개별 금융기관의 시각과 국가적인 시각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별 금융기관의 입장에서는 적당한 수준까지는 크기를 키우는 게 필요하겠죠. 스스로도 기회만 있으면 그렇게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 경제의 차원에서는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 대마를 어떻게 할 것이냐, 그 걸 떠안아야 한다면 공적자금 투입이 필요하고 그렇다고 쓰러뜨리면 경제사회적으로 더 큰 비용이 발생할 수도 있어 매우 난처한 입장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부가 대마를 억지로 떠안게 되고 그래서 대마불사가 되는데, 이런 비용까지를 사전에 감안한다면 규모를 키우는 것을 정당화 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대형화를 하나의 경영목표로 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구요. 특히 정부가 추구할 목표는 더욱 아닌 듯 싶습니다. 오히려 정부는 대형화가 초래하는 시스템 리스크를 통제하기 위한 규제의 틀을 갖추고 일단 문제 발생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두는 것이 필요한데 정부가 나서서 대형화를 인위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잘못된 방향입니다.
◇ "합병한다고 꼭 시너지 생기는 건 아냐"
- 하지만 개별 은행들의 입장에서는 규모를 키우고 싶어할 것이고 만약 합병 방식이 아니라면 또 각자 대출을 늘리려 몸집을 키우는 식이 될텐데 그 보다는 정부가 나서서 합병을 주선하는 게 필요하지 않느냐 하는 시각도 있잖습니까
▲합병을 하면 점포를 줄이고 인력감축 등을 통해 효율성을 높여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과연 잘 될 수 있겠느냐는 게 판단의 포인트입니다. 전 그게 어렵다고 보는 것이구요. 왜냐면 과거 외환위기 직후 은행들이 합병을 할 때는 피합병 은행이 부실했기 때문에 구조조정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지금은 크게 부실한 은행도 없고 업무 성격들도 비슷 비슷하니까 합병 후에 구조조정을 강력히 추진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지점을 꼭 줄여야 할 이유도 분명치 않구요.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구조조정을 해라 말라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은행의 경우 합병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 지분매각을 서둘러 민영화를 완결하고 합병 또는 대형화의 문제는 민영화 후의 주인에게 맡기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산업은행은 어떻습니까
▲산업은행을 외환은행과 묶는 시나리오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건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산업은행은 민영화 되면서 조달수단이 필요한데, 갑자기 점포를 많이 만들기도 쉽지 않고 산금채 발행은 민영화가 진행되면서 비용이 높아질 수 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외환은행은 점포도 많고 특히 해외점포가 있으니까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산업은행이 정부 소유인데 정부가 나서서 론스타가 주인인 외환은행을 합병의 파트너로 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으로 생각되네요.
◇ "우리은행 민영화와 은행산업구도 개편, 두마리 토끼 잡는 건 욕심"
- 하지만 우리은행을 팔 때 향후 금융산업의 구도까지 생각해서 팔면 공적자금도 회수하고 은행산업 구조도 개선하는 1석2조가 아니냐는 의견 때문에 고민하는 거 아닙니까
▲그건 욕심이라고 봅니다. 과거에도 주가가 더 오르면 팔겠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고 그것 때문에 연기했지만 그후 주가가 더 하락해서 의도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히려 옛날 포철(현 포스코)과 유사하게 분산매각을 추진해서 정부소유 은행의 민영화를 조기 달성하면서 동시에 금융권 지배구조의 모범사례를 만들 수 있다면 이 또한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정부가 나서서 지배구조 틀도 만들고 그 쪽 방향으로 열심히 하고 있는데 결국 그건 은행 지배구조를 잘 만들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분산매각을 통해 민영화시킨 후에 우리은행이 스스로 어떤 은행과 합병을 하겠다, 또는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부로서도 정말 반길 일이죠. 민영화가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에 그만큼 기여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니까요. 그렇지만 정부가 직접 나서서 우리은행을 A 은행 또는 B 은행과 매칭시키는 일은 사전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인 동시에 사후적으로도 성과를 장담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 만약 우리은행이 어떤 은행과 합병을 한다면 어디가 제일 적당할 것으로 보십니까
▲그건 중복 점포의 해소를 통해 규모의 경제가 얼마나 발생하느냐의 문제이지요. 규모의 경제 말고는 별다른 고려사항이 없다고 보는데요. 그보다 한 가지 비유를 해보죠. 어떤 빈 땅이 있는데, 주인이 이상한 건물을 하나 지어놓고 팔려고 한단 말이에요. 그럼 땅을 사는 사람은 건물을 부수거나 리노베이션하는 비용까지를 생각해서 사는 가격을 깍을 거란 말입니다. 결국 건물 가격은 낮아질 수 밖에 없지요. 마찬가지로 정부가 우리은행을 어떤 은행과 매칭시켜 놓으면 사는 측은 더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정부는 가치를 올려서 팔겠다고 하지만, 사는 쪽에서 보면 자기가 싸게 사서 가치를 올리고 싶은데, 정부가 가치를 올려서 높은 가격에 팔겠다는 것이거든요. 그럼 팔기가 어려워지지 않겠습니까. 우리은행, 산업은행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 "대형화보다 수익성이 먼저..대형화가 좋다는 건 오해"
- 그래도 은행 대형화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우리나라 은행은 상황이 다르다고 하는데요. 미국 은행들은 너무 멀리 갔다가 문제가 생겼지만 우리나라 은행들은 출발도 못한 상황이니까 우리는 그래도 앞으로 가야한다는.
▲나라마다 처한 환경이 다른 것이죠. 마치 전세계 은행권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최적의 규모가 있다는 가정 하에 미국 은행들은 너무 갔고 우리는 거기에 못 미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각 나라마다 잣대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미국은행을 미국의 잣대로 재고 우리나라 은행을 우리나라의 잣대로 재더라도 그들이 오버했고 우리는 덜 갔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하간 모든 은행들을 일직선에 놓고 따지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럼 우리나라의 금융환경에서 가장 적당한 은행의 사이즈라는 게 있을까요
▲있긴 있겠지만 찾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대형화의 효과는 규모의 경제(클수록 유리)와 범위의 경제(복수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유리)의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규모의 경제를 다루는 많은 논문들은 우리나라 큰 은행들이 이미 최적규모(optimal size)를 넘은 것으로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범위의 경제를 다루는 논문들은 대체로 확실하지 않다라는 결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은행의 대형화는 시장에서 필요한 시점이 되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지 세계 50위가 되어야 하겠다고 의도적으로 추진할 일은 아니며, 특히 정부가 나서서 추진할 일은 더욱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중소기업 서민가계 지원 신경써야..저축은행 구조개편 병행 필요
- 우리나라 은행들은 모두 영업구조도 같고 수익모델도 똑같은 붕어빵 은행들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몇몇 은행들은 그런 구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몸집을 키워서 해외에도 나가고 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는데요.
▲좋은 지적입니다. 특히 붕어빵이라는 지적이 아픈데, 하지만 그게 현실이고 해결방법이 마땅치가 않습니다. 몸집을 키우기 보다 일정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지녀 경쟁력을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영업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은 모두들 크게 무리를 안하고 위험한 투자를 안했다는 뜻인데, 물론 쏠림현상이라는 나쁜 의미도 있지만 불필요한 위험부담을 하지 않은 것이라면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나라 은행들이 큰 문제없이 이번 위기를 넘겼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모두들 금융을 키우자, 키우자 얘기를 하는데 폰지게임 같은 금융을 키워나가는 건 좋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은행들이 붕어빵이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큰 문제가 없었던 것 아닙니까. 그게 의도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 금융을 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일을 그르치게 할 수 있다는 거죠
▲무조건 50위권 사이즈의 은행이 되면 하늘에서 뭐가 떨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 하부구조를 확충하고 이를 토대로 내수를 키우는데, 즉 중소기업과 벤처 및 지역 소기업들을 키울 수 있도록 직⋅간접적인 역할을 더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것은 소규모 개방경제의 취약성을 지닌 우리나라가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위험관리의 기본틀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런 관점에서 다시 은행의 사이즈 문제를 생각하면 대형 은행보다는 작은 은행들이 많은 게 좋은 거라고 보시겠군요
▲그렇습니다. 은행들의 숫자가 줄면 경쟁이 줄어들면서 위험분산 효과도 줄어들게 됩니다. 최소한 국내시장에서 여러 가지 비용 발생이 예상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은행들에게 작아지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따라서 저축은행이나 지역 금융기관 육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상업은행들이 그런 일들을 모두 다 할 수 없으므로 금융기관들 간에 역할분담이 필요한데, 이에 필요한 교통정리는 당연히 정부의 몫이 될 것입니다.
◇ 윤석헌 교수 약력
-1948년 서울 출생
-現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
-現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現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장
-現 한국거래소 사외이사
-現 HK 저축은행 사외이사
-1971년 서울대 상대 경영학과 졸업
-1979년 미국 샌타클라라대 대학원 졸업 MBA
-1984년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영학 박사 Ph.D (Finance)
-1998년 한림대 경영대 재무금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