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본선에서 잇따라 한국팀의 승전보를 전하던 한 야구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직구가 갖춰지지 않은 채 변화구 같은 재주만으로는 마운드를 오래 지키기도 어렵고, 내로라하는 강타자들과 맞서기 어렵다는 말이다.
잘 치기 위해서는 일단 잘 막아야 한다. 한국 야구가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세계 강호들을 물리치며 준우승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투수들의 탄탄한 직구로 든든한 방어벽이 됐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 전문가들은 차의 품질이 야구로 따지면 직구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도요타와 혼다, BMW 등 유수의 글로벌 업체들과 경쟁해 이기려면 품질(직구)에 대한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만 브랜드 파워·디자인(변화구) 등이 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때 `싸구려` 이미지로 낙인찍혔던 현대 기아차가 세계 언론의 호평을 받으며 톱브랜드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게 된 근본동력은 바로 품질이다.
자동차의 본고장 미국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점유율은 지난달말 현재 7.6%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판매량도 지난해말 현재 417만9467대에 달했다.
◇ `불가사의`를 넘어 세계 톱브랜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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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의 이런 성장에 대해 해외에서는 몇 해전까지만해도 `불가사의한 일` 이라고 평가했다. 다소의 폄훼가 들어있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제는 글로벌 현대차의 노력이 만들어 낸 성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제네시스와 아반떼, 싼타페, 베르나, 투싼, 쌍트로, 그랜드카니발 등의 차종은 컨슈머리포트 등 해외 자동차 전문기관들로부터 `올해의 차`에 뽑혔다. 품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현대차(005380) 제네시스는 최근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국제오토쇼에서 발표하는 `올해의 차`에 올라 북미지역에서 겹경사를 맞았다. 제네시스는 종합 평점 803점으로, 경쟁 차종인 마쓰다 6(802점)와, 도요타 코롤라(752점)를 제쳤다. 현대차는 특히 제이디 파워의 내구품질조사(VDS)에서 3년 연속 품질만족도 향상을 기록했다.
전 세계 시장에서 단일차종으로 500만대가 넘게 팔린 아반떼는 글로벌 자동차시장의 준중형 대표세단으로 입지를 굳혔다. 이른바 `세계인의 차`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북미시장 뿐만 아니다. 자동차 선진국인 유럽에서도 현대·기아차에 대한 호평이 줄을 잇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11월 영국 자동차전문지 오토카로부터 `올해의 자동차업체`에 뽑힌데 이어 같은해 10월에는 독일 자동차전문지 아우토빌트의 자동차 품질보고서에서 종합 5위에 올랐다.
인도·중국 등 신흥 시장에서도 품질과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호평이 이어지며 브랜드인지도가 크게 높아졌다.
현대차의 브랜드 자산가치는 지난 2005년에 35억달러에서 2006년 41억달러, 2007년 45억달러를 기록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48억달러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 "이젠 현대차 時代"..현지 전략형 모델로 승부
현대·기아차는 올해 글로벌 판매확대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해외공략의 첨병은 미국·중국 공장 등 해외 생산 네트워크가 맡는다. 현지 전략형 모델의 선전에 정몽구회장이 크게 고무돼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글로벌 시장별로 고객들이 원하는 사양의 차량을 경쟁업체보다 신속히 공급함으로써 시장을 선점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전역에서 전방위 경쟁체제를 통한 판매확대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는 미국시장에 후륜 고급세단 제네시스와 최근 공개한 신형 에쿠스를 투입할 예정이다. 기아차도 소형 크로스오버카(CUV) 쏘울을 내놓는다. 현대차는 유럽 시장에 i20의 파생모델인 i20 3도어와 i30 블루를 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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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는 중국시장에도 위에둥(중국형 아반떼)에 이어 현지 전략차량을 추가로 개발, 오는 9월쯤 출시할 계획이다. 6월에는 신형 에쿠스를 출시, 고급 세단시장을 공략하는 등 다양한 라인업으로 중국시장 판매 확대에 주력키로 했다.
◇ 위기서 빛난 현대·기아차의 `공격 마케팅`
현대·기아차는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 파워를 키우기 위해 시의적절한 공격적 마케팅으로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품질경쟁력에서 밀리지 않기 때문에 브랜드 파워에도 힘이 실리고 있는 셈이다.
현대차가 지난 99년 세계 자동차 업체의 최대 격전장인 미국 시장에서 선보인 파격적인 보증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차는 무상 보증기간을 `5년 6만마일`에서 `10년10만마일`로 배로 늘려 소비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경쟁업체들의 보증기간은 `3년3만마일`에 불과했다.
당시 현대차 미국법인(HMA)에서 내놓은 이 아이디어는 내부반발이 만만치 않았다는 후문이다. 존립위기에 몰릴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경쟁업체들도 현대차가 얼마 못가 문닫을 것이라는 식으로 비웃었다.
그러나 정몽구 회장은 결단을 내렸고 이는 현대차 성장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 만큼 품질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미국 소비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싸구려` 이미지를 벗고 동시에 판매 증가와 소비자 만족도 상승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새로운 보증 프로그램에 대한 반대가 우세한 상황이었다"며 "판매부진을 털기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했는데 그 가운데 10년10만마일 보증 프로그램 전략이 적중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 글로벌 위기, 판매확대로 `정면돌파`
현대차 미국법인은 올해 1월 `10년 10만마일 무상보증`의 속편격인 보증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 판매확대를 위한 또 한번의 강수를 둔 것.
현대차는 `실업 공포`에 휩쌓인 미국인들의 심리를 이용해 차량구입 후 1년내 실직하면 차량을 무료 반납하거나 실직땐 새 직장을 구하는 3개월간 할부금이나 리스금을 보험사가 대납토록 하고 있다.
미국 법인장과 마케팅팀의 공동작품인 이 보증 프로그램은 현재 미국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GM과 포드, 도요타, 혼다 등 경쟁업체들의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는 가운데 현대차만 지난 1월 전년동기 대비 14.3% 증가한 실적을 기록했다.
서춘관 기아차 국내마케팅실장은 "판매확대를 위해 신차 마케팅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차별화된 브랜드이미지와 제품을 적극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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