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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글로벌 최대 가전 시장이다. 약 400억달러(53조5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LG전자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B2C거래에서는 이미 1위 수준에 올라섰다.
하지만 B2B 시장은 여전히 후발주자다. B2B시장은 전체시장의 20% 정도로 약 70억달러(9조3420억원)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냉장고, 세탁기·건조기, 식기세척기, 오븐 등이 세트로 빌트인 형태로 팔린다. 현재 선두주자는 제너럴일렉트릭(GE, 브랜드: 모노그램, 카페, 프로파일, 하이어), 월풀(브랜드: 월풀, 젠에어, 키친에이드) 로 약 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고 일렉트로룩스, 보쉬 등이 뒤를 잇고 있다. LG전자는 5~6위 수준에 그치고 있다. 새로운 성장동력으로서 미국의 B2B 시장을 노리는 이유다.
◇진입장벽 높은 B2B 가전…영업망 강화로 뚫겠다
소비자의 시선을 끌고, 유통업체를 적극 활용하면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B2C시장과 달리 B2B시장은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높다. 거래가 빌더(건축업자)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한번 그 회사의 제품을 쓰면 다른 회사로 바꾸지 않는 ‘락인 효과’가 크게 작용한다. B2C와 다른 차별화 전략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LG전자가 우선 꺼내 든 카드는 영업조직 대폭 강화다. 광고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B2C와 달리 B2B는 그야말로 ‘발품 장사’다. 빌더들을 일일이 만나 제품 사용을 설득해야 한다. 맨땅에 시작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LG전자는 월풀, GE 등에서 내로라하는 마케터 100여명을 대거 끌어왔다. 미국은 핵심 임원을 영입하면 실무팀도 함께 움직이는 구조다. 빌더들과 오랜 기간 네트워크를 보유한 임원들을 50만달러가 넘는 고연봉에 영입했다. 이들을 모아 빌더 전담 조직인 ‘LG 프로 빌더(LG Pro Builder)를 신설했고 탄탄한 조직을 갖췄다. 올해 새로 부임한 정규황 북미지역 대표 겸 미국 법인장은 미국에 3번이나 주재원을 한 ‘북미 영업통’이다. 정 부사장은 “지난 한해 어마어마한 인재를 영입했다”며 “B2B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인프라를 갖췄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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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카드는 제품 차별화다. 마케터들이 아무리 네트워크를 갖췄다고 하더라도 좋은 제품이 있어야 시장을 뚫을 수 있다. LG전자는 초 프리미엄 빌트인 가전 브랜드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 프리미엄 가전브랜드 ‘LG 스튜디오’ 등 라인을 갖추고 있다. 각각의 시장에 최적화된 제품 라인을 이미 구축해 놨다.
미국의 전통 가전 강자들은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의 제품을 판매하는 반면, LG전자제품의 강점은 IT와 결합이다. 여러 가전제품을 블루투스로 연결해 쉽게 제어할 수 있다. 이를테면 LG전자의 스마트홈 플랫폼인 ‘씽큐’를 활용하면 TV를 보다가 세탁이나 조리 시스템을 제어하거나 진행 상황을 쉽게 확인한다. 특히나 미국처럼 집이 큰 환경에서는 여러 가전제품이 연결돼 있으면, 소비자가 큰 이동 없이 다양한 가전제품을 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류 사장은 “아직 스마트홈은 필수기능이기보다는 있으면 좋다는 인식이 있지만, 소비자들이 스마트기능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며 “경쟁사 대비 먼저 시스템을 갖췄고, 새로운 고객가치를 만들면 이 시장 게임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미국도 전기화에 인센티브…히트펌프 등 강점
LG전자는 특히 미국 현지 전기화(electrification)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유럽보다는 상대적으로 느리지만 미국에서도 화석연료 사용과 탄소배출을 줄이는 전기화 및 친환경 수요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미국은 이르면 2분기부터 탄소를 저감하는 히트펌프 기술이 적용된 가전과 냉난방기 등을 구입하면 세금공제나 보조금 지원 혜택을 받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LG전자 자체 추정에 따르면 미국의 주거 전기화 시장은 현재 약 100억 달러(13조 3100억원) 규모로, 매년 15% 이상의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LG전자는 미국 환경청이 고효율 제품에 부여하는 ‘에너지 스타(Energy star)’ 인증을 획득한 히트펌프 건조기, 고효율 인덕션 쿡탑, 히트펌프 냉난방 시스템 등 주택에 필요한 전기화 제품 풀라인업을 갖췄다. 세제혜택이 있는 만큼 빌더들이 전기화에 강점을 지닌 LG전자 제품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실제 LG전자가 미국 시장에 선보인 히트펌프 기반 일체형 세탁건조기 ‘워시콤보(WashCombo)’는 출시 초반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기존 제품보다 초기 한달 판매량이 50% 이상 더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북미지역 대표는 “차별화된 제품이 LG전자의 핵심 파워”라며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제값을 팔고 제품을 팔겠다”고 강조했다.
류 사장은 “인디언이 기우제를 하면 비가 온다는 속담은 비가 올 때까지 기도를 계속 하면 비가 온다는 것”이라며 “생활가전이 뚝심있게 투자하고 성공했던 것처럼, B2B 시장 역시 그렇게 개척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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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는 늘 리스크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올해는 특히 미국 대선이 가장 큰 변수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리턴매치’가 사실상 이뤄질 가능성이 큰 가운데 현재로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좀 더 높은 편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LG전자는 아픈 기억이 있다. 월풀이 주도하면서 세탁기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조치를 받았고, 미국에서 사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최종적으로 세이프가드는 부당한 조치로 끝났지만, LG전자로서는 일부 사업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LG전자 입장에서는 수업료를 내고 공급망, 생산공장 다양화했고, 글로벌 가전 1위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미국의 테니시주 가전 공장도 당시 설립됐다. 류 사장은 “트럼프 시절 수업료를 내며 맣은 훈련을 했다”며 “생산지에서 이슈가 생기면 유연 생산체제를 미리 갖췄고, 여러 대비책을 세운 만큼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더라도 기회로 만들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