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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이사진이 불법행위를 하거나 자신의 임무를 게을리 해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면?
회사는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 그러한 결정을 한 이사진의 책임을 묻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회사와 경영진의 이해관계가 사실상 같고, 여러 이유로 책임 추궁에 소극적이다. 이 때문에 주주들은 회사에 소송하라고 요구(제소청구)할 수 있고, 그래도 회사가 소송하지 않으면 회사를 대신해 소송할 수 있다. 이것이 현행 상법이 허용하는 ‘대표소송’이다. 대표소송은 그간 제일모직, 글로비스, 신세계 등 여러 대기업에서도 있었다.
지금 국회에서 논의 중인 다중대표소송(상법 개정안)은 기존의 대표소송 원리와 다르지 않다. 다만 소송 가능 범위를 주주가 직접 주식을 가진 회사뿐 아니라 다른 회사(자회사, 손자회사)로 확대한 개념이다. 관련 회사가 2개이면 이중대표소송, 3개 이상이면 다중대표소송이다. 다중대표소송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2012년 대선공약(표 참조)이기도 하지만 이행하지 않았다. 지난해 야당의원 중심으로 새로운 법이 발의됐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논의중인 다중대표소송과 관련해선 찬반 논리도 팽팽하다. 찬반 논리는 아래의 표로 대신하고 제도를 둘러싼 대표적인 오해와 향후 입법 방향 중심으로 점검해본다.
◇소송 이기면 주주만 좋은일?…손해배상금은 주주몫 아닌 회사에게 돌아가
기존의 대표소송이나 국회 법사위가 논의 중인 다중대표소송 모두 가장 많이 받는 오해는 `주주들이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만 생각해 소송을 남발하면 결국 회사가 피해를 입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대표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소송을 제기한 주주들은 돈을 한 푼도 받지 않는다. 소송에 이겨서 돌려받는 금액(손해배상금)은 주주가 아닌 회사로 귀속되기 때문이다. 과거 삼성(제일모직)·현대차(005380)(글로비스) 등 그룹 총수가 연루된 대표소송도 손해배상금은 회사로 귀속됐다.
다중대표소송도 마찬가지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 손해배상금은 주주가 아닌 자회사 몫이다. 자회사 이사진의 결정에서 비롯된 손해금액을 회사에 되찾아주고, 더 나아가 이사진이 다시는 같은 방식의 불법행위나 임무를 게을리 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자회사 가치가 높아지고 자신들이 주식을 보유한 모회사 가치도 덩달아 올라갈 수 있다는 논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다중대표소송은 특정주주만의 이익을 위한 민사소송이 아니라 공익소송인 셈이다.
◇소송범위?…삼성전자·현대차 관계없고 지주회사나 비상장계열사에 주로 해당
다중대표소송을 둘러싼 또 다른 오해는 제도 도입시 소송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지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가령 삼성전자 대주주 삼성생명이나 현대차 대주주 현대모비스 주주가 사사건건 태클을 걸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논의 중인 다중대표소송으론 삼성생명이나 현대모비스 주주가 삼성전자·현대차 이사진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다중대표소송 관련 상법 개정안은 2개인데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안은 지분율 50%,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 안은 지분율 30% 초과 기업에만 다중대표소송을 적용하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 A라는 모회사가 B라는 자회사 지분 50%(또는 30%)을 가지고 있어야만 해당 모회사 주주(지분 1% 이상)들이 자회사 이사진의 불법행위에 문제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현대차 지분을 가진 계열회사가 다중대표소송 요건인 지분율 30~50%(그마저도 더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를 갖추기엔 이들 주식이 너무 비싸다. 지금 1대주주인 계열사가 더 사모으기 어렵다는 얘기다. 대신 삼성전자나 현대차는 지금도 해당주식을 직접 보유한 주주들이 현행 상법이 인정하는 대표소송을 제기하면 된다. 다중대표소송은 주로 출자구도가 수직화된 지주회사나 주주분산이 되지 않은 비상장계열사에 적용하는 제도다. 지주회사는 상장자회사 지분 20%만 갖춰도 되기 때문에 모회사가 상장자회사 지분을 50%씩 가지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따라서 주요 대기업 상장회사 중 적지않은 숫자는 해당하지 않는다.
◇국회 논의과정서 지분율 완화 가능성도…日 100% 자회사에만 적용
이마저도 국회 논의과정에서 좀 더 완화할 가능성도 있다. 이웃 일본의 경우 모·자회사간 지분율이 100%인 경우 다중대표소송을 허용한다. 국내에서도 일단 지분율 100%인 경우부터 우선 도입하자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러한 의견은 사실 법적인 현실성은 거의 없다.
자회사 지분 100%를 모회사가 가지고 있다면 자회사에는 이사진의 불법행위를 견제할 다른 주주가 없기 때문에 모회사 주주가 나설 수밖에 없는 어찌 보면 당연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의견이 제시되는 것은 일단 제도의 연착륙을 위해 우선 시행하자는 취지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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