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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이후)②잘나가는 축산선진국 `방역 비결들`

정태선 기자I 2011.04.11 12:30:00

`친환경 축산업`..가축분뇨·화학비료 상한 설정
`가축거래 상인` 허가 `환경위생교육 자격` 제한
한국 소비자 과반수 "축산업 사육방식 개선해야"

[이데일리 정태선 기자]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이 최초 확인된 것은 지난해 11월 28일. 이보다 10여 일 앞선 11월 중순쯤 이미 구제역이 발생했다. 경북도 가축위생시험소 측은 검역원에 이를 보고하지 않고 간이검사 결과만으로 구제역이 아닌 것으로 판단해버렸다. 
 
이 때문에 구제역 확진까지는 6일이나 걸렸다. 게다가 축산 분뇨 처리 차량이 앞서 같은달 17일 안동의 구제역 발생 농장의 축산 분뇨를 싣고 파주로 올라가 경기 북부로 확산된 원인이 됐다.

최초의 구제역 발생 단계에서 철저한 조사와 대응이 이뤄졌더라면 국내 돼지의 34%인 331만 마리, 소의 5%인 15만 마리 등 모두 347만마리가 매몰되고, 3조원이 넘는 피해를 본 재앙을 막을 수 있었다.

 
지난 1월.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사상 최대의 피해를 초래한 구제역 확산 원인을 발표했다. 구제역이 과거보다 피해가 컸던 가장 큰 원인은 조기 확진이 늦어지면서 이동제한 조치 등 초동방역이 실패한 탓이 컸다. 특히 지자체의 허술한 초동 대처가 구제역 전국 확산의 계기가 됐다. 



◇축산선진국, 가축분뇨·화학비료 상한까지 설정
 
선진국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사례를 보더라도 초동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영국.  영국은 2001년 2월 구제역 첫 신고 이후 9개월 동안 600만 마리 이상이 구제역으로 살처분 됐고, 매립된 가축 때문에 상수원 오염 등의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이후 영국 정부는 구제역 발생 신고방법에서부터 사후 매몰법까지 상세한 지침을 세웠다. 첫 발생 때 강력한 이동 규제를 통해 구제역 확산을 차단했고, 매년 구제역 대응 매뉴얼을 재점검하고 있다.

아울러 영국은 목초지 등 농경지 면적에 따라 사육두수를 규제하고 있다. 축산업의 근간이 흔들리고 경제적 타격이 컸던 만큼 국민의 불신을 잠식시키기 위한 제도적 보완에 중점을 두고 있다.

덴마크는 농가별로 축산분뇨를 살포할 수 있는 농경지를 확보해야 축산업을 허가해 주고 있다. 어미돼지는 1ha당 5.2마리, 비육돈은 17.6마리, 젖소는 2.3마리 등 농경지 면적당 가축사육두수도 제한했다. 농경지 면적당 가축분뇨와 화학비료사용량의 상한도 설정돼 있다.
 

6개월 이상 분뇨를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는 것도 의무고, 축사시설을 신축하거나 확장할 때는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모두 4개 단계로 기본교육기간만 3년6개월이나 걸리는 엄격한 시스템인 `녹색인증프로그램(GCP)`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정 자격증을 소유하면 농장 운영을 위한 저리융자, 국가정책자금 등의 혜택도 주어진다.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축산환경 규제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1980년대 초반 가축분뇨에 사회적 비판이 거세지자 네덜란드 정부는 1984년 11월 `양돈과 양계업 제한에 관한 잠정법`을 제정해 신규가축 사육을 금지하고 증산을 억제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분뇨생산쿼터(`87), 분뇨생산권(`94), 돼지사육권(`98), 가금사육권(`00), 분뇨이전계약제도(`02)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사육할 수 있는 가축 수와 분뇨생산량을 줄여 나가고 있다. 

벨기에는 모든 가축의 출생부터 도축까지 농장별, 개체별(소), 집단별(돼지, 닭)로 전산등록제를 시행하고 있다. 등록하지 않은 가축은 출하 이동할 수 없으며, 법정가축질병에 걸리면 살처분 등 보상금 지원대상에서 제외한다.

돼지나 닭의 사육두수를 늘리려면 환경자격증을 관할 행정기관에 신청해서 취득해야 한다. 이렇게 모인 정보를 기초로 국가적 차원에서 사육규모를 제한한다.

선진국은 가축거래상인까지 허가제도를 다양하게 도입하고 있다. 미국은 돼지고기 품질 향상을 위해 `돼지수송트럭 운전자에 대한 인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모든 트럭 운전자는 미국양돈생산자협회가 부여하는 수료증을 받아야 한다.

◇"국내 축산업, 62% 농장동물 사육방식 개선 필요"
 
유럽이나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선진국에서는 축산업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전원산업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혐오산업으로 간주한다.
  
이 때문에 구제역 이전 국내 축산업이 수익성을 높이고 규모화에 초점을 둔 `양적 성장` 위주였다면 구제역 이후엔 연구·개발에 기초해 생산성을 높이는 질적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환경에 부담을 주는 축산에서 동물복지·환경·녹색성장을 고려한 자원순환형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것. 

지난해 6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동물 복지형 축산물에 대해 소비자 50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62%가 농장동물 사육방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대답했고, 78%는 동물 복지형 축산물을 구매할 의사가 있으며 그 이유로는 52%가 건강에 좋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국내 축산업은 좁은 농경지와 초지 면적 등으로 선진국보다 친환경 축산물 생산을 위한 여건이 열악하고, 상대적으로 발전 속도가 느리다. 친환경 축산농가는 2006년 68농가, 2007년 763농가, 2008년 2904농가, 2009년 4441농가, 2010년 6265농가에 머물고 있다.

강국희 성균관대 명예교수(생명공학)는 "이번 구제역 재앙은 우리의 축산환경을 살펴보면 당연한 결과"라며 "가축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질병에 걸리느냐 안 걸리느냐의 문제는 타고난 체질, 생활환경(사육환경), 스트레스, 면역력에 의해 결정되는 만큼 사육환경의 획기적 개선, 자연친화적 사육방법 구축, 첨단과 전통의 조화로운 기술접목으로 종합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무하 한국식품연구원 원장(과학한림원 농수산학부장)은 "국가 가축 방역은 생축거래, 사료공급, 분뇨처리, 도축 등을 (일정규모 이상으로)집단화해야 해결될 수 있다"며 "축산 분야와 수의 분야가 협력해 축산업의 구조를 방역체제에 맞게 조정하는 대수술을 감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덕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에 축산업허가제를 도입한다면 가축전염병이 발병해도 조기 치료가 가능할 것"이라며 "동시에 사료, 분뇨 차량 관계자 등 간접적인 축산업 관계자까지 방역교육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구제역 이후)①서산이 재앙을 피할 수 있었던 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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