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된 컨셉의 이들은 90년대 활약한 패션 코드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올 가을 트렌드의 최전선으로 함께 복귀한 이들의 매력을 만나보자. 뉴욕의 대표 디자이너 캘빈 클라인, 그리고 90년대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디자이너 헬무트 랭과 질 샌더 등이 주도했던 미니멀 패션.
장식을 극도로 절제한 단순한 디자인이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고급스러운 소재, 오차 없이 완벽한 재단을 통해 표현되었을 때 미니멀리즘의 매력은 발휘된다.
화려한 무늬나 장식이 없는 대신 그만큼 옷의 선이 주인공이 되는 것.
90년대를 풍미했던 캘빈 클라인, 헬무트 랭, 질 샌더가 이젠 모두 자리에서 물러나 아쉬움을 주는데, 경영진과의 마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떠나게 된 랭과 샌더에 비해 클라인은 그래도 프란시스코 코스타에게 평화적으로 자리를 물려주어 팬 관리가 가능했다.
새롭게 미니멀 트렌드를 리드하는 그룹은 클로에 브랜드로 공통점을 가지는 매력적인 여성 디자이너 3명.
먼저, 클로에에서의 인기를 뒤로 하고 패션계를 떠났다가 셀린느의 수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피비 파일로는 봄 시즌에 발표했던 클린, 모던 컬렉션을 더욱 발전시킨 블랙 앤 화이트 의상들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파일로의 빈자리를 채운 현 클로에의 디자이너 한나 맥기본은 부드러운 베이지, 카멜 색상과 올 가을 핫 아이템인 와이드 팬츠로 한층 입기 편하고 여성스러운 미니멀 패션을 선보였고,파일로에게 클로에의 디자이너 직을 물려주었던 스텔라 맥카트니는 스포티 감각을 더한 슬림한 테일러드 룩을 전개했다.
소음과 절규를 음악으로 승화시켜 뮤직씬에 충격을 주었던 너바나는 같은 시애틀 출신의 록밴드들을 리드하며 그런지 시대를 열었고, 영향력은 음악을 넘어 영화, 패션에까지 미쳤다.
찢어진 진 위에 낡은 티셔츠들을 겹쳐서 껴입고, 마치 할머니가 입었던 것 같은 보푸라기 일어난 니트 카디건을 걸치는 등 거칠고 지저분해 보이기까지 했던 그런지 패션.
90년대 초 페리 엘리스의 디자인을 맡고 있던 마크 제이콥스도 그런지를 접목한 컬렉션을 시도한 바 있는데 비록 당시엔 좋은 평을 얻지 못했지만 이후 패션 역사적으로 중요한 부분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번 시즌 다시 돌아온 그런지 코드를 자신의 브랜드와 루이 비통 컬렉션에 접목한 마크 제이콥스는 우아한 롱 스커트, 드레스에 두툼한 니트를 입거나 빈티지 스타일의 롱 베스트, 코트를 레이어드하는 등의 한결 정돈된 그런지 룩을 연출했다.
다채로운 프린트의 에스닉 패션을 즐겨 발표해온 드리스 반 노튼도 올 가을 그런지를 가미했는데, 화려한 문양은 정리하는 대신 레이어링에 포커스를 맞춰 캐주얼하고 세련된 그런지 스타일을 완성했다.
긴 스커트와 길고 느슨한 니트 탑의 매치는 바로 올 가을 그런지의 대표적인 스타일링.
우아한 실크 슬립, 전원풍의 로맨틱 드레스, 흐리고 탁한 톤의 꽃무늬 아이템들이 투박한 니트와 주로 만났다.
랄프 로렌의 집시풍 꽃무늬 드레스와 피터 솜의 우드스탁 히피 분위기의 프린트들도 그런지 트렌드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었다.
니트 탑은 날씨가 추워지면 담요 같은 랩, 케이프와 터프한 느낌의 무톤 재킷 등 아우터들로 대체될 전망.
자 그렇다면 어떤 쪽의 90년대 룩이 마음에 드는 지.
때에 따라 풀어진, 혹은 단정한 모습으로 변신해 보는 것도 가을 패션을 즐기기에 재밌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