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 제공] 1909년 10월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당시 일본 최대 권력자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안중근 의사(1879~1910)의 결연한 의지와 모습은 100년이 지난 현재에도 가슴이 뭉클하다.
그런 만큼 안중근 의사의 존재만으로도 뮤지컬 '영웅'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이 되는 10월26일 첫 공연을 시작했으니 객석은 더욱 뜨거웠다.
극은 지나치게 무겁게,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나열하지 않는다.
철저한 고증을 통한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가미해 대한독립의 뜻을 같이했던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와 함께 하얼빈으로 향하는 안중근의 인간적인 고민과 갈등이 주를 이룬다.
7발의 강렬한 총성과 암전이 되는 적막함 속에 이토 히로부미가 처단되는 클라이맥스 부분이 지나면 안중근은 일본 재판 법정에서 명성황후 시해, 을사보호조약 강제 체결 등 15가지 이토 히로부미의 만행을 조목모목 밝힌다.
여순감옥에서 담담히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안중근의 모습에 감동은 커진다.
감옥에서 의연하게 '동양평화론'을 집필하는 안중근의 모습은 일본 간수마저 고개를 떨구게 한다.
안중근은 '위국헌신 군인본분'이라는 붓글씨를 일본 간수에게 마지막 선물로 건네고 "동양평화란 나는 두 손을 불끈 쥐고 한 손으로 이토를 죽였지만 내 아이들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데 쓰일 수 있는 것"이라며 일본인 간수와 인간적인 교감을 나눈다.
아들을 걱정하고 사랑하면서도 "너의 죽음은 너의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한국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라는 안중근의 어머니는 손수 아들의 수의를 지어 보낸다.
안중근 역을 맡은 류정한의 안정적인 연기가 돋보이는 대목으로, 적지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을 안중근의 처참한 실상에 객석 곳곳에서는 눈물을 훔친다.
하지만 악의 축으로 안중근과 대치되는 이토 히로부미를 극도로 악랄하게 표현하지는 않았다. 각자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다한 인간으로 그렸다.
억지로 애국심을 고취하려 들거나 섣부른 민족주의를 강요하지 않아 극을 편안히 감상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명성황후 시해를 목격한 조선의 마지막 궁녀로 일본 게이샤가 되어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을 도모하는 설희(김선영), 안중근이 대한제국 의병군 참모총장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생활할 때 그를 도와주고 사모하게 되는 중국인 링링(소냐) 등 허구 인물들은 남성 중심의 독립운동가들만 등장할 뻔한 극을 풍성하게 했다.
꼼꼼히 검증을 거친 작품답게 공들인 효과가 무대에서 발현됐지만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다.
안중근 의사의 관심이 고조된 시류를 타고 등장한 반짝 뮤지컬이 아닌 진정한 영웅의 이야기가 되기 위한 과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역사속 실존 인물과 허구 인물의 구분을 가다듬고 좀더 매끄러운 진행이 이루어진다면 관객들의 공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뮤지컬 '안중근'은 12월31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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