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가 돌아간다. 손끝에 흙이 감긴다. 밋밋하던 점토가 S라인을 찾아가기까지. 장인의 손은 마술을 부린다. 최근 드라마에서 본 ‘꽃남’의 모습이 비쳐서일까. 도자기를 빚어내는 손길이 여심을 흔든다.
300여개 요장, 700명 도예가가 있어요
이천 도자기 마을을 취재한다며 무턱대고 길을 나섰다. 3번 국도를 지나다 ‘사기막골 도예촌’ 팻말을 본 기억이 떠올라서다. 무작정 찾아간 길 위, 아니나 다를까. 마을 팻말과 함께 큼지막한 도자기가 마을의 정체성을 알려주고 있었다. 차를 몰고 들어간 골목에는 크고 작은 도자기 상점이 들어서 있다. 길 구석구석 장인의 작업실이자 보금자리에는 도자기 가마도 자리를 잡았다.
얼핏 보기에는 작은 규모의 마을. 그러나 사음동 사기막골만 둘러보고 간다면 도예촌의 큰 줄기를 놓치고 만다. 이천 도자기 마을은 신둔면 전체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700명이 넘는 도예가가 300여개 요장을 이끌어가는 곳. 도대체 왜 이천에 도자기 장인들이 모여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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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도자기 역사를 잇는 마을
16세기 초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천 지역 특산품으로 도자기가 소개됐다. 이천 지역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토기 조각들은 천년의 도자기 역사를 증명한다. ‘사기막골’, ‘점말’ 등의 지명도 이천 도자기 마을의 옛 모습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16세기 후반 이천 도자기 생산은 오히려 위축됐다. 경기도 광주에 왕실용 도자기를 구워내기 위한 관요가 생기면서부터다. 이천 지역 도공들이 관요로 차출됐기 때문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천 도자기가 명성을 되찾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가 지나서다. 해방 이후 신둔면 수광리 일대에는 두 곳의 칠기 가마가 남아 있었다. 전쟁으로 파괴된 도자기 문화재를 모으고 도예기술을 되살리자는 움직임이 계속됐지만 늘 재정적인 어려움이 뒤따랐다. 그러다가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일본인의 한국 방문이 자유로워졌고, 전통 도자기에 대한 수요도 급격히 증가했다. 1970년대 이전 3개에 불과하던 가마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기점으로 100여개로 늘어났다.
농사를 지으면서 도자기를 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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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하면서 신둔면사무소에 들렀다. 때마침 신둔면 수광1리 정종복 이장과 연락이 닿았다. ‘2009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를 한 달여 앞둔 시점. 그의 손은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정 이장은 30년 넘게 이천에서 도자기를 빚고 있다. 이번 비엔날레에도 그는 작품을 출품할 예정이다. 왜 이천에서 도자기를 굽기 시작했냐는 질문에 “흙이 좋아요. 철분이 섞인 지하수도 청명한 도자기를 만드는 일등공신입니다”라며 물레질을 멈추지 않는다.
수광1리에만 도예 가구가 50여 집이 넘는다. 정 이장은 날씨가 풀리면 벼농사도 직접 짓는다. “땅이 좋아 이천 쌀이 유명하지요. 좋은 점토에서 훌륭한 자기가 나와요”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마을 앞 큰길에 옹기 공장이 있었다. 이천으로 모여든 도예가들은 7~8년 전까지 그 길을 따라 빼곡히 도자기 공방을 운영했다. 그러다가 지하철이 들어온다는 소식에 공방이 있던 자리를 부동산이 채웠다. 그래도 이천 가마불은 꺼지지 않았다. 취재를 하고 있는 몇 시간 동안 도예촌 공방을 찾은 일본 관광객 수는 어림잡아 200~300명이 넘었다. 생생한 일본어 해설과 함께 도자기 만들기 체험이 이뤄졌다. 청아한 도자기에 비친 한국의 멋에 일본인들은 매료되고 있었다.
이천의 힘, 세계도자비엔날레를 이끌다
도예 과정을 자세히 보고 싶어 장휘요를 운영하는 최인규 명장을 소개받았다. 청자를 다루는 그의 작업실에 들어서자 사방이 온통 흙에서 나온 것들이다. 물레에서 나와 모양이 갓 잡힌 자기부터 유약까지 발라 맑고 깊은 색을 발하는 청자까지. 만드는 과정을 소개해달라고 하자 최 명장은 잘 생긴 점토부터 꺼내왔다. “예전엔 직접 흙을 반죽해서 점토를 만들었는데, 요즘엔 기계가 흙의 기포까지 빼내 줍니다. 직접 발로 돌리던 물레는 전기가 대신 돌려주죠.” 번거로운 작업이 많이 줄었지만 역시 도자기 모양을 잡고 문양을 그리는 것은 장인의 몫이다. 건조와 초벌구이, 유약 바르기와 재벌구이를 통해 어엿한 완성품이 되기까지 장인은 며칠, 혹은 몇 달을 작업실과 가마를 오간다.
최 명장 역시 오는 4월 25일부터 개최되는 ‘2009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에 작품을 출품한다. 전세계 70개국 3200여점이 전시되는 비엔날레에서는 국내 명장의 작품은 물론 젊은 도예가의 신선한 작품까지 만날 수 있다. 이천, 광주, 여주 행사장에서 전시, 워크숍, 퍼포먼스, 체험행사 등이 다양하게 열린다.
세계도자비엔날레는 서울과 인접해 수도권 지역 방문객에게는 하루 코스이지만 그 외 지역에서 올 경우 마땅한 숙박시설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이천 도예촌에서는 마을 체험장 운영을 확대해 비엔날레 방문객이 도자기를 더욱 가깝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숙원사업이다. 2년에 한번 행사가 열릴 때만 이천세계도자센터까지 셔틀버스가 운행되는 것도 불편한 점이다. 행사장 근처에는 설봉공원, 설봉산, 이천시립박물관 등 볼거리가 풍성하지만 이천세계도자센터에서 나와 도예촌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는 불편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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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비엔날레가 열리면 이천 도예가에게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최 명장은 “우리 도자기를 알리는 행사이기 때문에 기쁘지만, 일회성 행사가 아닌 지속적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축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행사가 끝나면 도자센터는 썰렁하리만큼 조용해진다. 그러나 이천 도예촌에서는 1년 내내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6개월~1년 정도 꾸준히 배우면 누구나 그럴싸한 도자기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곧 비엔날레가 개최된다. 2007년 행사 때는 5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축제에 참여했다. 행사장과 인접한 곳에 도예촌이 있다. 도자기라 해서 값비싼 예술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은 찻잔, 주전자, 접시, 인테리어 소품 등 도자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은 다양하다. 더 나아가 도자기를 직접 만드는 체험도 가까이에 있다. 쫀득하고 찰진 이천쌀밥을 내는 이천의 흙 맛은 도예촌에서 더욱 잘 맛볼 수 있다.
가는길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이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신둔면행 14번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이천 세계도자센터까지는 4월 25일부터 5월 24일 행사시간 동안만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차를 몰고 올 경우 중부고속도로 서이천 IC나 영동고속도로 이천 IC로 나와 3번 국도를 타면 된다. 사음동과 신둔면 근처에 도예촌이 형성돼 있다.
맛집
고미정/ 신둔면 수광리에 있는 한옥 기와집 음식점이다. 한정식에 오르는 홍어요리를 위해 대청도와 흑산도 연안을 오가는 배를 직접 운영한다. 백자정식 1만원~청자정식 3만 원 선이다. 031-634-4811
가마솥이천쌀밥집/ 이천시 대월면 대포리 홍씨 일가 이천쌀밥을 맛볼 수 있다. 불고기한정식 1만5000원이다. 031-633-8818
서산꽃게간장게장/ 이천쌀밥과 간장게장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돌솥간장게장 1인분에 1만1000원이다. 031-631-6171
숙박
은화장모텔/ 이천시 사음동에 위치해있다. 숙박비는 3만~4만 원이다. 031-638-2231
레인보우호텔/ 이천시 신둔면 수남리에 있다. 가족 단위 숙박도 가능하다. 1박에 4만~6만 원 선이다. 031-637-3084
이천도예촌 체험프로그램/ 수광1리에서 직접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따로 민박을 하지 않기 때문에 숙박은 시내 중심가에서 하는 게 좋다. http://ceramic.invil.org/ 031-632-7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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