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진 한국회계기준원 원장은 3일 대한상공회의소에 있는 기준원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통해 국내 ESG 공시 법정화의 의미와 여파에 대해 “ESG 공시는 기업이 그동안 마케팅 언어로 다뤄온 ESG를 법적 책임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이라며 “공시 정보의 신뢰성을 근본적으로 높일 것이다”라고 기대했다.
ESG 공시는 기후공시를 시작으로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2027사업연도부터 적용된다. 기업들의 준비 기간은 5개월 남짓이다. 내년 1월 1일부터 자산 10조원 이상 상장사는 연결 기준으로 탄소 배출량을 측정해 1년간의 기후공시 사항에 대해 2028년도 사업보고서에 담아야 한다.
재계에서는 국내 ESG 공시 도입 속도가 빠르다는 비판도 있다. 곽 원장은 이에 대해 “실제로는 빠른 것이 아니라 뒤따라가는 수준”이라며 “새로운 출발이 아니라 기존 준비 수준을 제도화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스코프3(간접배출) 공시에 3년의 유예 기간을 두었고 면책 규정을 도입한 만큼 현실을 감안한 단계적 준비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국제적 관행을 그대로 따랐다기보다 국내 공급망의 준비 수준과 기업의 이행 가능성을 비중 있게 고려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곽 원장은 회계기준위원회(일반 회계기준 담당)와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담당(KSSB) 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KSSB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만든 국제 기준을 근간으로 삼아 한국형 지속가능성(ESG) 공시기준을 제·개정하는 역할을 한다. KSSB의 첫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세트는 지난 2월 초안이 발표됐다.
다음은 곽병진 원장과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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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리스크와 기회를 투자자가 보다 정확히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 인프라 구축에 의미가 있다. 기업 간 비교 가능성과 정보의 일관성을 높여 자본시장의 정보 비대칭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자율공시를 법정공시로 전환하는 것은 단순한 형식 변화 이상의 의미다. 사업보고서와 같은 법정공시는 허위·누락 공시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 및 행정·형사 제재가 수반되는 만큼 기업의 관심도와 주의 의무를 실질적으로 강화해 공시 정보의 신뢰성 제고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2027사업연도 적용은 5개월도 남지 않아 준비 기간이 촉박하다.
△초기 적용 기업 수나 재무보고와의 동시 공시 여부 등에서 일본보다 빠르고 강하게 도입되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일본은 스코프3 공시나 인증 시기, 공시 범위 자체는 오히려 더 넓거나 강한 측면도 있어 각국이 자국 여건에 맞게 다른 방식으로 설계한 것으로 봐야 한다. 기업별로 ESG 데이터 관리 수준과 내부 통제 체계, 전담 인력 구성 등에서 편차가 있는 만큼 모든 기업이 같은 수준으로 준비돼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정 규모 이상 기업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되고 초기 공시 범위와 요구 수준도 현실적으로 설계됐다. 이미 많은 기업이 글로벌 투자자 대응이나 공급망 요구에 따라 자발적으로 공시를 준비해 온 만큼 완전히 새로운 출발이 아니라 기존 준비 수준을 제도화하는 과정이다.
-한국의 ESG 공시 도입 속도가 빠르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는 빠른 것이 아니라 뒤따라가는 수준이다. 일부 언론에서 과도하게 빠르다고 평가하지만 국제 비교를 보면 그렇지 않다. 한국 경제 규모와 위상을 고려하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EU)은 대형 상장사가 이미 2024회계연도분부터 공시를 시작했다. 중국도 주요 대형 상장사에 공시를 요구하고 있으며, 일본과는 사실상 비슷한 시간대다. 다만 제도적 후퇴 움직임을 보이는 미국보다는 분명히 앞서 있다.
-제조업 중심 산업 구조에서 ESG 공시가 더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제조업 비중과 중소기업 구조 등 어려움은 인정한다. 이를 고려해 지원책과 유예기간을 둔 것이고, 기준 자체도 ISSB 기준 중 일부(기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이다. EU처럼 모든 주제를 한 번에 적용하는 것보다 부담은 낮다.
-자산 기준과 공시 채널은 초안보다 강화됐는데 스코프3는 왜 유지됐나.
△금융위원회가 제도 전반의 균형과 국내 기업의 현실적 이행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스코프3는 기업이 직접 통제하기 어려운 공급망 전반의 데이터를 포함해 데이터 가용성의 한계, 협력사 부담, 측정 방법론의 미성숙 등 현실적 제약이 존재한다. 국내 3년 유예는 국제적 관행을 그대로 따랐다기보다 국내 공급망의 준비 수준과 기업의 이행 가능성을 비중 있게 고려한 조치다.
-스코프3 공시 관련 기업 부담이 큰데 대응은.
△스코프3는 기업 내부가 아니라 외부 데이터 기반이라 측정이 어렵고 추정치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3년 유예를 둔 것이다. 정부와 환경부, 환경산업기술원이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추진하고 있고, 산업별로 데이터 인프라를 만드는 중이다. 시간이 지나 데이터가 축적되면 신뢰성 문제는 점차 개선될 것으로 본다.
-KSSB의 초안 마련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사항은.
△국제 기준과의 정합성을 유지하면서도 국내 기업 환경에서 실제로 수용·실행 가능한 기준을 만드는 것이었다. 국제정합성 측면에서는 ISSB 기준을 근간으로 투자자에게 유용한 정보 제공, 재무적 중요성 중심의 공시, 글로벌 비교 가능성, 향후 검증 가능성까지 고려했다. 국내 수용가능성 측면에서는 기업의 준비 수준과 부담을 고려한 단계적 적용, 공시 요구 수준의 현실화, 이해관계자 의견 조율을 거쳤다.
-국내 기업의 기후리스크 재무평가 수준을 어떻게 보나.
△자율공시 체계 하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자원이 투입되고 측정·검증이 어려운 기후 관련 재무적 영향 공시가 미흡하다는 평가가 제기돼 온 것이 사실이다. 자율공시 체계에서 ESG 공시가 재무부서와 충분히 연계되지 못하고 별도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기후 목표나 전환계획이 실제 사업계획·재무 가정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점이 주요 요인이다. 데이터 축적 부족, 내부 통제 체계 미비, 전문 인력 부족도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연결자산 기준으로 공시한 곳이 현재 1%에 불과한데.
△이를 기업 준비 부족만으로 보기보다 지금까지의 자율공시 체계에서는 연결 기준 공시가 의무적으로 요구되지 않았다는 제도적 배경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KSSB 기준으로 연결 기준 공시 요구가 명확해짐에 따라 기업들도 데이터 수집 범위 확대, 내부 관리 체계 정비 등을 통해 점진적으로 대응 수준을 높여갈 것으로 예상한다.
-제3자 인증기관 논의는 어느 단계인가.
△아직 초기 단계다. 로드맵 초안에는 자율공시였기 때문에 인증 관련 구체적 내용이 포함되지 않아 어떤 기관이 인증을 수행할지도 확정되지 않았다. 법정공시가 된 만큼 독립성과 전문성이 중요하다. 회계법인뿐 아니라 환경·에너지 등 전문 검증기관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기관 참여가 논의될 수 있다. 구체적 범위와 요건은 금융위원회 워킹그룹 논의를 통해 정해질 것이다. 유럽 등 주요국에서 국내 인증기관의 인증을 신뢰할 수 있을지는 국제감사인증기준위원회(IAASB)의 국제지속가능성인증기준(ISSA 5000)과의 정합성 확보, 국제 상호인정 체계 구축 여부, 인증기관의 자격 및 품질관리 요건 등이 핵심 논의 대상이 될 것이다.
-정부는 인증 체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으로 보나.
△당국은 직역 중립적인 체계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 특정 직역에 한정하지 않고 전문성과 요건을 갖춘 기관에 열어두되, 진입 규제와 행위 규제를 통해 관리하는 방식이다. 인증은 원래 법정 공시 체계 안에 포함되는 요소로, 사업보고서 공시 체계로 전환되면서 함께 논의되는 것이다. EU나 일본 등에서는 회계사 중심 인증이 많고, 국제적으로는 ISA(국제감사기준) 등을 활용하는 사례가 있다. 국내도 단일 기준을 정해 인증기관들이 활용하는 방식으로 갈 가능성이 높으며, 구체적인 기준은 금융당국이 정하게 된다.
-허위 사업보고서에 대한 면책규정이 해외 투자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나.
△최종 형태는 법률 전문가 협의와 입법 과정을 거쳐 확정될 사안이지만, 기존 자본시장법 체계 내에서 구현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적용 대상은 국내 투자자뿐 아니라 해외 투자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투자자 국적이 아니라 공시의무 위반 및 손해 발생 여부 등 법률상 요건 충족 여부에 따라 판단될 것으로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