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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동떨어진 '반지하 이주 대책'…10채 중 9채 매입 불가

김아름 기자I 2023.06.23 10:57:39

반지하 빌라 계약 92.9%, 준공 20년 넘어
LH 지하층 매입 사업 실적 ''0 건''
SH 실적도 목표한 3450 채의 2.8% 불과
장마철 침수 피해 되풀이 우려

서울 시내 한 반지하 주택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아름 기자] 장마철 침수 사고를 막기 위해 정부가 반지하 주택을 공공임대로 매입하겠다고 나선 가운데 서울 시내 반지하 빌라 10 채 중 9 채는 공공 매입 대상이 아예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거주용 반지하 빌라 대부분이 20 여 년 전에 지어져 공공 매입 임대주택 사업의 최소 기준인 ‘준공 20 년 이내’ 를 충족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행정으로 올해 장마철 반지하 세입자 피해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3일 홍기원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5월까지 신고된 서울 내 연립·다세대 주택 임대차 계약 9 만 3196 건 중 반지하 빌라 계약은 2264 건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8월 서울 관악구와 동작구에서 침수로 반지하 빌라 세입자 4명이 사망한 뒤로도 반지하 전월세는 여전한 셈이다. 특히 이 기간 반지하 빌라 계약의 92.9% 에 달하는 2104 채는 2003년 이전에 지어져 준공 20년이 넘은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세입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반지하 빌라 대부분은 지은 지 20년이 넘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LH) 는 지하층 주택 매입 대상을 준공 20년 이내 주택으로 한정하고 있다. LH 가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지하층 주택 매입 사업 추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LH가 해당 사업으로 거둔 실적은 ‘0 건’ 으로 나타났다. LH 는 지난해 10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지하층 주택을 매입하겠다는 공고를 냈지만 단 한 채의 주택도 매입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폭우로 반지하 세입자가 사망하자 정부는 반지하 빌라 거주자가 지상 주택으로 이사 가도록 지원하고 반지하 주택을 없애기 위한 여러 정책을 쏟아냈다. 그중에서도 지하층 주택 매입은 반지하 주택을 근본적으로 없앨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이라는 게 정부 측 설명이었다. 하지만 반지하 주택을 없애기 위한 핵심 사업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LH 가 애초부터 매입 대상을 현실과 맞지 않는 기준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LH 가 진행하는 매입임대 사업은 지하층 주택이 포함된 기존 빌라를 매입한 뒤 지상은 공공임대로 활용하고 지하는 공동 창고 등 입주민과 지역민의 공동이용시설로 사용하는 형태다. ‘매입임대 업무 처리 지침’ 상 기존 주택 매입 가능 대상은 준공 15년 이내이지만 지난해 폭우 이후 국토부가 한시적으로 관련 제한을 해제해 주면서 매입 대상이 준공 20년 이내 주택으로 완화됐다.

문제는 거주용 반지하 빌라가 2003년 이전에 지어진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 완화된 준공연도 기준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최근 지어지는 빌라는 지상에 필로티 등을 둬서 주차장으로 쓰는 등 지하 거주 공간이 사실상 없다. 서울 강동구와 영등포구, 노원구의 경우 지난해 폭우 피해 이후 임대차 계약이 이뤄진 지하층 빌라 100% 가 2003년 이전에 건축됐다. 폭우 피해로 사망자가 발생한 동작구와 관악구 역시 지하층 빌라의 임대차 거래 중 준공 20 년을 넘은 비율이 각각 92%, 89.2% 에 이른다.

LH 측은 “ 향후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려면 열악한 조건의 주택은 매입해선 안 된다는 원칙이 있다” 며 “준공 20 년을 넘은 빌라의 경우 ‘신축 매입약정’ 방식으로 매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축 매입약정은 민간 건설사와 LH 가 약정을 맺고 기존 반지하 주택을 매입해 철거하고 새로 신축하면 이를 공공임대주택으로 사들이는 방식이다. 하지만 주택 소유자와 LH 가 직접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건설사가 중간에 참여해야 해 사업 진행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LH는 민간 건설사를 끼지 않고 공공이 직접 매입한 뒤 신축하거나 리모델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준공연도 제한 없이 지하층이 포함된 주택을 공공이 매입하고 철거한 뒤 신축해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내용이다. 이 같은 방식을 적용해도 사업 진척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기존 주택 매입 사업의 준공 20년 이내 기준은 여전한 데다 이 기준을 통과하더라도 넘어야 할 벽이 높기 때문이다.

일례로 LH 는 가구 내 보일러실이 없거나 세탁기 공간 확보가 어려운 주택일 경우 매입 대상에서 제외한다. ‘근생 빌라’(근린생활시설이 포함된 주택)나 불법 건축물은 매입 대상이 아니다. 실제 서울주택도시공사(SH) 는 준공연도 기준을 따로 두지 않고 있지만 다른 요건 충족이 쉽지 않아 반지하 주택 매입 실적이 이달 5일 기준 98 채로 올해 목표한 3450 채의 2.8% 에 그친다 .

새로 추가되는 공공 리모델링 방식 역시 빌라 한 동을 통째로 매입하려면 소유주 절반 이상의 동의가 필요해 사업이 원활히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매입 비용, 신축 비용 등을 고려하면 기존 주택 매입 대비 배 이상 예산을 투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제도를 개선해도 또 다른 벽이 많은 탓에 지하층 주택 매입을 통한 거주자 이주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현실적으로는 물막이판(차수판 ) 등 침수 방지 시설 설치를 서두르는 것이 올여름 또 다른 폭우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 이라고 전했다 .홍 의원은 “ 반지하 대책이 말뿐인 대책이 되지 않으려면 반지하 건물에 한해서라도 하루빨리 준공연도 기준이나 지역 제한 등 매입 대상 주택 기준을 현실적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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