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117만 8329원. 지난 8년간 1982년생 개띠 김선영(가명·36)씨를 묶어온 족쇄다. 24살 청춘이 감당하기 버거웠던 채무는 교사라는 김씨의 꿈마저도 한동안 포기하게 했다. 8년간 신용불량이라는 멍에에 고통받아온 김 씨의 사연은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다. 올해 7월말 현재 종합 신용정보집중기관인 한국신용정보원에는 95만9429명이 3개월 이상 연체 등으로 채무불이행자로 등록돼 있다. 하지만 김씨에게 2018년은 다르다. 김씨는 그를 얽어맸던 빚을 드디어 벗어던지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 아버지 사업 부도로 시작된 빚의 굴레
아침 드라마 같았다. 건설업을 했던 김씨 아버지는 사업 확장 과정에서 사기를 당했다. 투자한 돈은 몽땅 허공에 날아갔고 회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수십억대 자산을 가진 재력가였지만 회사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돈은 모래땅에 쏟아진 물처럼 사라졌다. 전업주부 김씨 어머니, 학교에 다니던 김씨가 돈을 빌리기 시작한 이유다.
김씨는 “아빠와 다투고 집을 나와 대학 기숙사 생활을 하던 중에 엄마가 찾아왔다”며 “엄마가 내 앞에 내놓은 건 종이 한 장이었다”고 돌이켰다. 학자금대출 용지였다. 김씨는 종이 몇 장에 사인을 했고, 3년 뒤 신불자가 됐다.
2005년 교생실습을 나가 있던 김씨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빨리 빚을 갚으라’는 채무상환 독촉 전화였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김씨는 “왜 나한테 갚으라고 하는 거지”라고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네 빚은 내가 갚겠다”라던 아버지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건 법원의 판결문이 집으로 날아온 때였다. 김씨는 “갚아야 할 금액이 써 있는 옆에 내 이름이 부모님하고 같이 피고인으로 돼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김씨와 김씨 가족의 삶은 구렁텅이로 추락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이후 10년 넘게 식당 주방일을 전전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다. 사범대를 졸업한 김씨 또한 학교가 아닌 학원 강단에 서야 했다.
김씨는 “은행 다니는 친구들이 실적을 올리려고 카드를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이렇다할 이유도 없이 얼버무릴 수 밖에 없었을 때 미안하고 난처했다”고 털어놨다.
은행이나 카드사 등 금융사에서 돈을 빌리고 3개월안에 못 갚으면 신불자가 된다. 신불자는 대부분 금융거래가 제한된다. 통장, 카드를 못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교통카드도 선불이다.
◇ 20대에 시작한 빚 갚기 30대 중반에야 끝나
마지 못해 선택한 길이었지만 학원은 재기의 발판이 돼줬다. 아이들을 밤낮으로 가르치면서 번 돈으로 조금씩 빚을 갚아나갔다.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의 개인워크아웃제도도 김씨를 도왔다.
개인워크아웃은 3개월 이상 연체된 신불자가 일정 요건을 갖추면 상환기간 연장, 채무 감면 등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개인워크아웃이 신복위에서 받아들여지면 원래 빚의 이자는 탕감되고 원금을 최장 8년까지 나눠 갚을 수 있다. 김씨는 개인워크아웃을 통해 6500여만원을 감면받았다. 나머지 3500여만원은 매달 갚아나갔고 지난해 드디어 모든 빚에서 벗어났다. 그사이 20대였던 김씨는 30대 중반의 나이가 됐다.
빚을 털어낸 김씨는 학원을 그만두고 오래전 포기했던 임용고시에 다시 도전할 계획이다. 중고교 국어선생님이 목표다.
김씨는 “점수 올리는데만 매달리는 강사가 아닌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마흔살이 되기 전에는 이룰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비슷한 처지의 이들에게 혹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부탁했다. 머뭇거리던 김씨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라면 이렇게 말했다.
“새해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라고 인사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거에요. 어렵고 힘든 날들이 이어지겠지만 그래도 소소한 행복을 가끔은 느끼면서 살면 좋겠어요. 그런 것들이 세상을 살아내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