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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조를 굴리는 사람들]"나는 ㅇㅇ한 남자"

장영은 기자I 2011.09.29 11:18:01

류재천 현대운용 상무 "펀드매니저는 기본적으로 소심해야"
"기업 탐방·리서치 중시..안되면 될때까지 `끝장토론` 불사"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나는 소심하다" 
 
처음 보자마자 본인의 소심함을 고백하는 남자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작은 것 하나 결정할 때도 오래 생각했다. 퍼즐 맞추기나 조립하는 것처럼 손이 많이 가는 일을 좋아했다" 

주인공은 류재천 현대자산운용 상무(사진). 그는 말한다. "펀드 매니저만큼 소심성이 바탕이 되야 하는 직업이 없다. 기본적으로 남의 돈을 굴리는 직업이다. 과감하게 투자하고 싶다면 자기 돈으로 해야 한다"라고.

투자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일정 수준의 절대 수익을 항상 내야 한다. 그러니 최대한 손해를 보지 않게 조심할 수 밖에 없다. 소심하고 또 소심해야 하는 이유다. 
 
"나는 무식하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행정학과에 들어갔다. 그리고 당시 가장 인기있는 직장이었던 투신사에 입사했다. 입사할 때만 해도 펀드매니저가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회사 소유의 부동산과 관련된 각종 법적, 행정적인 업무들을 했다.

그러던 중 1997년 사내에서 펀드매니저를 공개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투신사의 꽃`이라는 매니저가 됐다. 그런데 과감히 뛰어든 매니저의 길은 쉽지 않았다. 

"소위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경영이나 경제를 전공한 것도 아니었다. 매니저가 되고 보니 아는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좋은 기회다 생각하고 즐기는 마음으로 일했다"

류 상무는 `무식했기 때문에` 더 열심히 발로 뛰었다. 성격도 한 몫했다. 기업을 볼 때도 퍼즐의 맞는 조각을 찾듯, 성을 조립하듯 꼼꼼히 보고 구조를 파악하려고 했다.

지금은 매니저가 기업 탐방 나가는 일이 당연하게 생각되지만 그때만 해도 이례적이었다. 류 상무는 "매니저들은 자리에 앉아 전화를 하거나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고 (주식을) 매매하곤 했다"며 "나 같은 경우 그렇게는 제대로 알 수가 없으니 직접 가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애널리스트들도 직접 찾아다녔다. 모르는 것은 일대일로 붙어서 물어봤다. 그만의 `베스트 애널리스트` 명단도 있다. 이 리스트는 지금도 틈나는대로 업데이트 되고 있다.

"나는 독사다"
 
`이거다` 싶을 때는 실행에 옮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충분히 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확신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독사`다. 류 상무는 "어렸을 때 별명은 샌님이었다"며 "지금은 일단 판단이 서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매주 일요일 현대자산운용 주식운용팀은 `무제한 집중토론`을 한다. 시작 시간은 오후 4시, 끝나는 시간은 따로 없다. 우선 매니저별로 한 주간 수익률을 낱낱히 검토하고 잘못한 부분과 잘한 점을 하나하나 따져본다.
 
업종과 종목에 대해 분석하고 앞으로의 대응전략이 나올 때까지 끝없는 토론이 이어진다. 내친 김에 이슈토론과 독서토론까지 할 때도 있다. 그야말로 지독하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종목 선택을 할 때도 그렇다. 류 상무가 최근 가장 잘 나가는 주식 중 하나인 엔씨소프트를 담은 것은 지난해 12월. 제 9구단을 만든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급락할 때였다. 당시 주가는 20만원 아래. 최근에는 약세장 속에서도 승승장구하며 30만원선을 웃돌고 있다.

류 상무는 펀드매니저를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기본기를 먼저 다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사람도 유아기 때 모든 게 정해지듯이 매니저도 처음이 중요하다. 수급처럼 일시적인 모멘텀에 좌우되지 말고 기업의 본질적인 펀더멘털을 파악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큰 것 한 방, 당장의 달콤함에 연연하지 말고 공들여 탑을 쌓듯 꼼꼼하고 신중하게 가라는, 소심하고 무식하며 독한 선배 매니저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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