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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만장 앞에서 절망했던 그는 왜 AI를 들었나… 윤경림의 리걸테크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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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기자I 2025.12.07 17:48:04

리걸테크 스타트업 A2D2 창업한 윤경림 전 KT사장
기록 폭탄은 약자 겨냥...그래서 기술을 들었다
2만장도 수시간~수일내 뚝딱 분석
사건 요약, 타임라인, 인물관계도 강점
"아날로그 문서 남은 모든 산업이 타깃"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윤경림 전 KT 사장은 2023년 KT CEO 최종 후보에 올랐지만, 곧이어 검찰 기소에 휘말리며 지금까지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당시 상황을 “최종 CEO 후보로 선정되자마자 이름도 모르는 시민단체의 고발이 이어졌고, 다음 날 서울중앙지검이 바로 수사에 들어갔다. 여러 경로로 ‘용산 분위기가 안 좋으니 빨리 물러나라’는 압박이 전달됐다. 매우 억울했고 외부 압력이 작용했다고 느꼈다”고 증언했다.

2024년 7월, 그가 처음 받아든 수사 기록은 무려 2만5000쪽. 재판까지 남은 시간은 2주였다. “정신이 혼미했다. 프린트도, 복사도 불가능한 분량이었다”고 한다.

프린터 업체 사장조차 “이건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할 만큼이었다. 이 기록의 벽 앞에서 윤 전 사장은 결국 IT(정보기술)를 선택했다. 방대한 문서를 스캔해 AI에 넣고 자동 분류·요약·타임라인 생성을 시도했다. 사흘 뒤 변호인단에 전달된 결과물은 ‘5명이 두 달은 매달려야 할 양을 한 번에 정리한 수준’의 디지털 사건 파일이었다. 이 경험이 리걸테크 스타트업 A2D2와 AI 증거문서 분석 서비스 ‘아일렉스(AiLex)’의 출발점이 된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기록 폭탄은 약자를 겨냥한다… 그래서 기술을 들었다”

윤 전 사장은 검찰의 ‘물량 폭탄 전략’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다. “검사들이 기록을 끝도 없이 쏟아냅니다. 읽지 말라는 뜻이죠. 아니면 돈을 써서 변호사를 잔뜩 쓰라는 구조예요. 약자가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했다.

성남FC 사건 기록이 40만 페이지, 이재용 삼성 회장 사건이 트럭 두 대 분량이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록은 폭증한다. 그러나 이를 정리하는 노동은 대부분 어소시에이트 변호사에게 집중된다. 그는 “변호사 일의 4분의 3이 막노동이다. 문서를 받고, 출력하고, 줄 치고, 요약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 이 구조를 깨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예 방식을 바꿨다. 그는 “아날로그 기록물을 전부 AI에게 던지고, 싹 정리해서 돌려받는 방식이죠. 이 싸움을 기술로 뒤집어보고 싶었습니다”라고 했다.

A2D2 설립 1년… “수만 페이지를 AI가 통째로 읽는 시대”

A2D2는 지난해 11월 설립됐다. 윤경림 의장, 김윤우·장일준 공동대표, 뉴욕주 변호사 출신 이영주 CLO(최고법률책임자), 글로벌 IT기업 SAS의 AI/ML 개발 총책임자 출신의 공승현 CTO(최고기술책임자)가 합류하며 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현재 직원은 11명이며, 법률신문의 9억 투자와 팁스·신용보증기금·과기정통부 AI 바우처 등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아일렉스는 형사·민사 사건용 대량 문서 AI 분석 시스템이다. 수천·수만 페이지 문서를 그대로 넣으면 AI가 구조화해 다시 돌려준다. 스캔PDF·텍스트PDF·워드·hwp·사진(JPG·PNG) 등 대부분의 형식을 처리하고, 2000장은 2~3시간, 2만 장도 수 시간~수일 내 분석한다. 용량 제한은 사실상 없으며, 10만 페이지 테스트까지 마쳤다. 모든 작업은 보안 폐쇄망에서 이뤄진다.

핵심 기능은 사건 전체 요약(A4 네 쪽 내외), AI 타임라인, 등장인물 관계도, 맥락 기반 검색, 금융자료 자동 정규화·의심 거래 탐지 등이다.

가격은 사건당 월 1만9000원. 평균 1년 사용 시 약 30만원이다. 반복 사용 비중이 높아 20건 이상 쓰는 로펌도 있다. 서비스를 출시한지 이제 5개월 정도됐는데 현재 누적 사건 100건 이상, 고객사 70곳이 아일렉스를 사용하고 있다.

장일준 A2D2 대표는 “AI 분석·보안·문서처리 기술이 핵심 경쟁력”이라며 “초기 오픈 환경에서 테스트했지만 즉시 폐쇄망으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로톡의 ‘슈퍼로이어’가 법령 판례기반 문서 작성 중심 SaaS(서비스형소프트웨어)라면, 아일렉스는 대량 기록 분석과 반복 노동 제거에 초점을 둔다.

“AI는 기술이 아니라 구조를 바꾼다”

한국 법률 시장은 연 9조원 규모, AI 리걸테크 시장은 300억원 수준이지만 연 60%로 성장하고 있다. 윤 전 사장은 “5년 내 1500억 이상으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AI는 기술적 병목을 거의 제거했다. 지금 중요한 건 각 도메인에서 무엇을 바꿀지”라면서 “일본 등 해외에서도 아일렉스에 관심이 크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매출 자랑이 아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디지털 격차 문제는 더욱 큰 문제다. 이를 해소하는 AI서비스로 힘과 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간의 간극을 줄여주는 약자를 위한 A를 만들고 싶다. 약한 사람이 더 심하게 당하지 않도록 구조를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법률은 시작일 뿐… “아날로그 문서가 남은 모든 산업이 타깃”

KT 사장, AI·DX 전략가였던 그가 창업자의 길을 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할 일이 많아서다.

윤경림 전 KT 사장(A2D2 의장)은 “A2D2는 아직 ‘법률 스타트업’이라기보다 아날로그 문서 처리 회사에 가깝다. 그래서 회사명이 AI Analog Data Digitization이다. 종이·스캔PDF·파편화된 문서 때문에 DX·AX가 막힌 산업이 너무 많다”고 언급했다.

그는 은퇴 후 스마트팜 운영을 준비하며 농기계·포크레인 자격증까지 취득했지만, 창업으로 계획을 미뤘다. 그래서 “언젠가는 농업·스마트팜을 다시 해보고 싶다”고 언급했다.

최근에는 위스키와 AI를 결합한 책 제작 실험도 하고 있다. 그는 “제 생각을 AI에게 넘기고, 저는 한 글자도 쓰지 않는 책을 만드는 프로젝트예요. 쪽팔리지 않고 나이 들고 싶었다. 제가 잘하는 방식으로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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