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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탈취는 모르쇠하고 보안감점은 억울하다는 방산기업[생생확대경]

김관용 기자I 2023.08.06 15:32:17

차세대 호위함 선도함 건조한 HD현중, 후속함 잇단 고배
군사기밀 탈취 이력으로 인한 감점이 탈락 원인
기술 보다 보안 중요시하면 방산 생태계 '왜곡' 문제제기
기술탈취에 대한 반성없이 불만만…책임있는 자세 아냐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HD현대중공업이 해군 차세대 호위함 건조 사업 탈락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방위사업청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 차세대 호위함(사업명 울산급 배치-Ⅲ)은 HD현대중공업이 설계하고 그 첫 번째 함정(충남함)까지 만들었던 배다.

그런데도 후속함을 단 한 대도 건조하지 못하게 됐으니 답답한 노릇일 것이다. ‘최저가 입찰제’로 진행됐던 2·3·4번함 건조 사업은 저가 수주 업체를 이길 수 없어 애초에 입찰을 포기했다. 제도 개선 이후 진행된 마지막 물량 5·6번함 사업에 목을 맸지만, 이 역시 한화오션에 패했다. 함정 건조는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된다. 선도함 건조 업체가 후속함을 하나도 만들지 못하는 첫 사례가 될 처지다.

HD현대중공업은 방사청에 여섯 가지 항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중 눈에 띄는 게 ‘보안감점 룰’ 문제다. 이번 5·6번함 사업 제안서 평가에서 HD현대중공업은 기술점수에서 한화오션에 소수점 차이로 앞섰다. 그러나 1.8점에 달하는 보안 감점으로 패자가 됐다. 바뀐 보안감점 관련 지침이 소급 적용돼 과한 제재를 받고 있고, 기술 능력보다 보안사고 감점이 수주의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는 것은 문제라는 인식이다.

지난 4월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해군의 차세대 호위함 ‘울산급 Batch-Ⅲ’의 1번함 충남함 진수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방위사업청)
HD현대중공업 입장에선 보안 감점이 적용되는 향후 3년간 수상함은 물론 잠수함 등 각종 군함 건조 사업에서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기술이나 실적보다 보안 감점 중심의 제안서 평가는 방산 생태계를 심각하게 왜곡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HD현대중공업이 받고 있는 보안 감점은 사상 유례없는 군사기밀 탈취의 결과다. 2014년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은 해군 간부로부터 한화오션이 만든 한국형 차세대 구축함(KDDX) 개념설계도(3급 군사기밀) 등을 ‘도둑 촬영’해 보관해 왔다. 이같은 사실이 2018년 4월 국군방첩사령부(옛 국군기무사령부) 불시 보안감사에서 적발된 것이다. 혐의자 12명 중 9명이 기소돼 전원 유죄 판결을 받았다.

보안 감점의 정확한 명칭은 ‘불공정행위 이력 감점’이다. 불공정행위 이력이 평가 항목에 포함된 것은 각 기업이 자체 기술 개발에 매진하는 건전한 공정 경쟁 체제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특히 기술 탈취·도용으로 인한 과잉 경쟁, 혼탁 경쟁을 예방하기 위한 장치다. 앞서 한화오션 역시 기밀자료 관리 절차 부실로 인해 2년간 1.5점의 보안감점을 받은 바 있다.

이번 5·6번함 사업 제안서 평가에서 받은 감점 1.8점(누적 18점)은 뇌물, 금품수수, 담합, 사기 및 부정행위 관련 규정을 모두 위반해야 받을 수 있는 감점 규모다. 그만큼 매우 엄중한 사안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HD현대중공업은 직원 다수가 연류된 조직적 사건임에도 이를 개인 일탈로 치부했다. 지금까지도 잘못을 인정하거나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보안 감점 때문에 사업 수주를 못하게 됐다며 억울해 한다. 국가방위사업을 영위하는 책임있는 기업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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