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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는 지난해 언론사 기자 및 그 가족, 국민의힘 의원,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한변) 회원 등 수백명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빚었다. 특히 조회 대상이 공수처의 수사 대상에 속하지 않는 민간인이 다수여서 대규모 민간 사찰을 벌인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에 한변은 지난 2월 ‘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가 다수의 선량한 일반 국민에게 위압감·불안감을 불러 왔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고, 무더기 자료 조회를 벌인 데 대한 구체적인 사유·경위 제출을 요구했다.
공수처는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에 근거해 당시 통신자료 조회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은 정당한 수사행위라고 맞섰다. 법률에 근거해 조사대상자의 범죄사실·증거인멸 정황 등을 파악하기 위한 임의수사로, 절차적·실체적으로 적법하며 수사의 상당성 역시 충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재의 헌법불합치 판단으로 이러한 방어논리는 효력을 잃게됐다. 이헌 한변 부회장은 “고위공직자 신분도 아닌 자들을 겨냥해 무차별 통신자료를 취득한 것은 수사의 목적에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를 벗어난 위법한 수사”라며 “이번 헌재 판단으로 사생활 비밀과 통신 자유 및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한 불법적 수사임이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오는 9월 국가배상소송 2차 변론기일이 예정된 가운데, 공수처는 통신자료를 조회한 구체적인 경위 및 사유에 대한 자료를 제출해달라는 한변의 요청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수처는 일부 내용이 외부에 유출 시 수사 중인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며 난색을 표하는 입장이다.
법조계는 지난해 4월 이른바 ‘이성윤 황제조사’ 논란이 불거진 당시 공수처가 내부 정보 유출 경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광범위한 통신자료 수집을 벌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통신 조회는 황제조사 논란을 보도했던 언론사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부회장은 “출범 초창기 공수처가 황제조사 논란을 포함해 온갖 구설에 시달리자 ‘이것들 봐라’식으로 감정적 대응을 하면서 논란을 자초한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한편 공수처는 헌재 결정 직후 입장문을 배포해 “공수처는 향후 국회가 해당 법 조항 개정을 추진할 경우 논의 과정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며 “통신자료를 제공 받는 과정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동시에 수사상 목적도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히 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이라도 공수처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제도적·기술적 통제 장치를 통해 통신자료 확보 과정에서 적법성을 넘어 적정성까지도 지속적으로 확보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