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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최은영 기자] 세상에는 두 부류의 싱글이 있다. 놀 줄 아는 싱글과 놀지 못하는 싱글. 김민선 씨는 단연코 전자다. 33세 싱글녀. 직업은 피부과 의사다. 사회에선 ‘미스 김’, 직장에선 ‘닥터 김’으로 불린다. 고향은 광주.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기 시작한 지는 8년쯤 됐다. 1년 전 동갑내기 친구와 살림을 합쳐 지금은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망원동 다세대주택에서 한 지붕 두 가족 생활을 하고 있다. 룸메이트는 대기업 식품회사에 다니다 김씨와 같이 살기 시작할 무렵 그만두고 타투이스트가 됐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때려치웠죠.” 요즘 같은 불경기에 대단한 ‘용녀’(勇女)다.
이들의 생활을 줄여 말하면 한마디로 ‘삼삼하다’. 보금자리도 생활방식도 조금 부족한 듯한데 멋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56㎡(약 16평) 아담한 공간에도 있을 건 다 있다. 코타츠(일본식 난방용 테이블)와 미니 빔프로젝터, 기타와 우쿨렐레. 거실 한쪽 벽면에는 커다란 나무패널을 세워 각종 전시회 포스터와 엽서 등을 한가득 붙여놨다. 요즘 한창 전시 중인 미국 유명 사진작가 라이언 맥긴리의 ‘청춘, 그 찬란한 기록’ 포스터도 보였다. 대다수 사람에겐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공간’인 집이 이들에겐 ‘카페’고 ‘영화관’이고 또 ‘찜질방’이다. 이 모든 혜택을 누리는 데 드는 비용은 계약 당시 낸 보증금 1500만원에 다달이 내는 70만원이 전부다. 물론 둘이서 생활하니 비용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김씨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지어진 집인데 건물이 오래돼 좋은 점은 옥상이 넓다는 거다. 여름에는 친구들과 고기도 구워먹고, 내 집 앞마당처럼 쓰고 있다”고 자랑했다. 혼자 살지만 혼자 살지 않는다. 김씨는 트위터와 미투데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섭렵하며 친구들의 근황을 듣고 소식을 전한다. 사람을 만나고 쇼핑을 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때에도 항상 아는 사람을 통한다. 동갑이라 통하는 게 많은 남자친구도 있다. 그런데 왜 싱글로 사느냐고 물었다.
“혼자서는 외롭죠. 무서울 때도 있고요. 그런데 결혼해서 둘이 살아도 외롭지 않나요? 사람은 모두 외로워요. 고독함을 어떻게 더느냐가 중요한 거죠. 지금의 생활이 즐겁습니다. 그런데 왜 친구를 찾느냐고요? 혼자서도 충분히 잘 놀지만 같이 놀면 더 재밌다는 것도 알거든요.”
도대체 어떻게 놀기에 재미있다는 건가. 김씨의 휴일 하루를 따라다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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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다. 김씨는 남들과 달리 매주 수요일에 쉰다. 방 친구 ‘장초’(본명은 장초영. 두 사람은 이름 대신 서로의 성과 이름 첫자를 따서 불렀다)씨가 ‘짬 처리’ 요리 실력을 발휘했다. 메뉴는 치킨볶음밥. 하루 전 먹다 남은 치킨에서 살코기만 발라 당근·양파·파프리카 등을 넣고 볶았는데 ‘엄마 밥상’이 따로 없다. 뒤처리는 김씨 몫이다. 설거지한 이후엔 여느 때처럼 휴대폰을 잡았다. ‘페친’(페이스북 친구) A씨가 겨울철 피부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 솔직하게 얘기해 준다. ‘깨끗한 세안에 충분한 보습, 여기에 약간의 시술?’
11:00_오랜만에 4인방 모여 ‘19금’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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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수다 삼매경에 빠져 목공예 강습에 늦었다. 혼자 살며 달라진 것은 자기계발과 여가생활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입의 40%를 저축하고 생활비에 기타 유동 비용을 제외한 20%를 자신에게 투자한다. 1년에 한 가지씩 새로운 경험을 하는데 지난해에는 우쿨렐레를 배웠고 올해는 목공예에 도전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나무냄새가 참 좋다. 지금 만들고 있는 협탁이 완성되면 병원에 갖다놓고 쓸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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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옷 장만을 위해 친구가 운영하는 홍대 인근 옷가게에 들렸다. 고양이 친구 요미도 볼 겸. 혼자 사는 이들에게 애완동물 하나쯤은 필수다. 작은 물고기나 거북이라도 좋다. 집안 어딘가에 나 말고 숨을 쉬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상당한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룸메이트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어 이 가게에서 대리만족을 얻고 있다. 이날 산 건 회색 원피스에 연두색 카디건. 진열된 그대로다. 감각이 달리거나 정보가 부족할 때에는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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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단골 와인바다. 룸메이트의 남자친구가 한 달에 한 번 피아노공연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는 한때 인디밴드 레이지 본의 키보디스트였다. 학창시절 밴드 보컬로 활동한 김씨를 배려해 고마운 제안을 해줬다. “이번 주말 함께 공연하지 않을래요?” 이날 김씨는 상큼한 모히토에 취하고 감미로운 음악에 취하고 아련한 옛 생각에 다시 취했다. 집에 가면 따뜻한 코타츠에 발 넣고 미니 빔프로젝터로 영화 보며 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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