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과 사업전환…백척간두에 선 `美대표 코인거래소` 제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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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I 2026.02.23 07:14:13

작년 하반기 IPO 직후 ''크립토 윈터'' 장기화에 경영 악화
주가 작년 고점대비 -80%…비용 70% 늘때 매출 +17% 그쳐
직원 4분의1 줄였는데, 추가 감원 추진…고위임원들도 줄퇴사
핫한 예측시장 신사업 도전…경쟁 격화에 성장세 장담 못해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가상자산업계에서도 가장 오래된 1세대 거래소 중 하나인 제미니 스페이스 스테이션(Gemini Space Station Inc.)이 위기에 몰렸다. 가상자산 혹한기(크립토 윈터)가 길어지면서 실적이 악화하자 대규모 구조조정과 사업 전환으로 반전을 모색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카메론과 타일러 윙클보스 형제


카메론·타일러 윙클보스 형제가 10년 이상 일궈 온 제미니 거래소가 경영 악화로 인한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 내에서 주요 규제 승인을 비교적 이른 시기에 확보한 곳들 중 하나로, 업계가 반복적으로 스캔들과 붕괴를 겪는 사이클을 거치면서도 살아남았다. 그러나 비트코인 가격이 지난해 10월 역사상 최고치 이후 50% 가까이 급락하자 제미니는 ‘얼마나 빠르게 회사 체질을 바꿀 수 있는지’를 평가 받는 시험대에 올랐다고 블룸버그통신이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달 초 제미니는 직원의 최대 4분의 1을 감원하고 영국·유럽연합(EU)·호주에서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주에는 최고운영책임자(COO),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법무책임자(CLO)가 같은 날 모두 퇴사했다. 주가는 상장 이후 지난해 고점 대비 80% 이상 하락해, 한때 거의 40억달러에 달하던 시가총액이 7억달러 아래로 쪼그라들었다.

이날 블룸버그는 회사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 제미니는 이미 발표한 25% 감원 외에도 최근 며칠 사이 미국 내 직원들을 추가로 조용히 내보냈다. 또한 세 명의 임원 퇴사는 비용 절감 노력의 일환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트루이스트증권(Truist Securities) 애널리스트인 매슈 코드, 루커스 라마단, 캐머런 맥클라우드는 이날 보고서에서 “가장 큰 문제는 제미니 경영진이 내년까지 가상자산 강세장이 이어질 것이라는 데 큰 베팅을 했는데, 가격이 붕괴된 만큼 이젠 전략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따.

제미니는 애초부터 시장 선도 업체는 아니었고, 지금은 더 뒤처졌다. 캔터 피츠제럴드에 따르면 제미니가 올 1월에 처리한 글로벌 현물 가상자산 거래 비중은 0.1%로, 이미 미미했던 지난해 6월의 0.6%에서 훨씬 더 낮아졌다.

이제 가상자산 관련 매출이 증발하고 비용은 높아진 상황에서, 윙클보스 형제는 회사의 미래를 더 새로운 사업에 걸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내부적으로 제미니는 막 출범한 예측시장(prediction markets) 플랫폼에 점점 더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는 뜨겁지만 경쟁이 치열하고, 그 자체로 논란도 있는 분야로의 피벗(전환)이다.

그 사이 제미니의 기존 핵심 사업은 압박을 받고 있다. 전날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회사 비용은 약 70% 증가한 반면, 순매출은 17% 늘어나는 데 그쳤다. 또한 캔터 애널리스트 브렛 크노블라우치와 개러스 가체타는, 곧 사라질 해외 시장이 2025년 첫 9개월 매출의 약 15%를 창출했다고 지적했다.

주가에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했던 미즈호(Mizuho)도 “감원과 해외 철수는 수익성 달성 속도를 높이기 위한 ‘필요한 외과수술’”이라고 평가하며 제미니의 커스터디(수탁) 사업과 예측시장 플랫폼이 그나마 추가적인 실적 악화를 방어해줄 기반이 될 것으로 봤다.

제미니가 영국·유럽·호주에서 철수하기로 한 결정은 시장을 충격에 빠뜨렸다. 불과 몇 달 전 런던의 번화한 카너비 스트리트(Carnaby Street) 쇼핑 지구에 화려한 새 사무실을 열었고, 2025년 내내 EU에서 핵심 라이선스를 확보하는 데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이번 주 제미니는 COO 마셜 비어드, CFO 댄 첸, CLO 타일러 미드가 즉시 회사를 떠난다고 밝혔다. 카메론 윙클보스가 비어드의 업무 일부를 맡고, 새 COO를 뽑을 계획은 없다고 했다. 내부 직원 두 명이 임시 CFO와 임시 법무총괄(Interim General Counsel)을 맡는다. 또한 예측시장 사업을 이끌던 임원도 최근 회사를 떠났는데, 새 제품이 출시된 바로 그 달에 물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나스닥 상장 이후 제미니 주가 추이 (자료=블룸버그)
상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에서 핵심 고위 경영진이 동시에 떠나는 일은, 이들의 퇴사 배경과 회사의 방향성에 대한 의문을 키웠다. 비어드는 회사와의 의견 불일치 때문에 떠난 것이 아니라고 제미니는 설명했다. 다만 첸이나 미드의 사임도 동일한 맥락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첸은 CFO로 취임한 지 1년이 채 안 된 상태에서, 9월 상장을 총괄했다. 그는 제미니의 신용카드 사업을 주도했는데, 여러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이 사업은 지난해 서비스 매출 증가를 이끈 몇 안 되는 사업이었다.

제미니의 상장은 가상자산 랠리가 정점에 가까웠던 시점에 이뤄졌지만, 이후 시장은 급격히 되돌려졌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주가는 상장 후 장중 고점(45.89달러) 대비 80% 이상 하락했다. 결과적으로 상장은 ‘낙관론이 극대화된 순간’의 밸류에이션을 확정해버린 셈이 됐다.

여기에 제미니 같은 거래 플랫폼을 규율할 미국 입법이 지연되는 점도 압박을 더하고 있다. 회사가 국내 사업의 안정화를 위해 기대했던 ‘규제 명확성’이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상장 이후 주가가 폭락하면서 주식으로 지급된 보너스의 가치가 대부분 사라졌고, 이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 또 일부 직원들은 해고될까 봐 두려워 최근 몇 달 동안 주 7일 근무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상장사 지위는 사업 안정화의 선택지도 복잡하게 만들었다. 상장사가 신규 자본을 조달하는 과정은 비상장 때보다 번거롭다. 예컨대 주식 발행은 규제 공시가 필요하고, 이미 큰 손실을 본 주주들의 지분을 더 희석시킬 수도 있다.

상장으로 조달한 4억2500만달러가 완충재가 될 수 있지만, 현금 소모 속도는 가파르다. 2025년 잠정치에 따르면 총비용은 최대 5억3000만달러, 예상 순매출은 최대 1억7500만달러 수준이다. 월간 거래 사용자(MTU)는 17% 증가해 약 60만명이 됐다.

형제가 계속 회사 운영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만큼, 사업을 지속하기 위한 현금 투입 가능성은 “있을 법하다”고 코드는 말했다. 그는 “다만 사용자 성장 둔화가 그 정도의 현금 소모와 동시에 나타나면, 투자자들은 지급불능 문제를 우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나마 윙클보스 형제는 제미니의 미래가 단지 핵심 거래소 사업에만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형제는 지난 5일 블로그 글에서 “우리의 명제는 예측시장이 오늘날의 자본시장만큼, 혹은 그보다 더 커질 것이라는 점”이라고 썼다. 제미니는 지난해 12월 예측시장 플랫폼을 출시했으며,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로부터 새로운 라이선스를 확보했다.

다만 현재까지 성과는 크지 않다. 회사에 따르면, 제미니의 예측시장 계약은 출시 이후 1만명이 넘는 이용자로부터 2400만달러 이상의 거래량을 처리했다. 캘시와 폴리마켓에 이어 코인베이스와 로빈후드 마켓 등이 잇달아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한때 세계 최상위 가상자산 거래소의 선두주자라고 자부하던 회사는, 이제 더 작아졌고 더 좁아졌으며 창업자들의 통제 아래 더 단단히 들어왔다. 관건은 구조조정과 피벗이 ‘의미가 있을 만큼’ 빠르게 진행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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