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로자 파크스 흑인 할머니는 뒤쪽 흑인 좌석이 아닌 앞쪽 백인 좌석에 앉았다. 운전사는 즉시 경찰에 연락했고, 파크스 할머니는 경찰에 끌려가 12달러의 벌금을 물고 나서야 풀려났다.
당시 앨라배마에서는 `분리평등(separate but equal)`이라는 흑백분리 정책에 의해 버스의 앞좌석 네 번째 자리까지는 백인만 앉을 수 있었다. 이를 거부한 파크스 할머니는 체포됐던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격분한 흑인 인권 운동가들은 투쟁을 시작했고, 이 운동을 이끈 젊은 목사가 바로 당시 26세였던 마틴 루터 킹이다. 킹 목사는 그로부터 13년후인 1968년 백주 대낮에 호텔에서 백인의 총에 맞아 살해된다.
그런 미국에서 불과 40여년만에 흑인 대통령이 나오리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첫 흑인 대통령, 역사적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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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노예제도가 1863년 남북전쟁의 종식과 더불어 공식적으로 폐지됐고, 1964년 인권법 제정으로 인종차별이 제도적으로 금지됐지만 노예제의 후유증인 흑백의 갈등은 여전히 미국 사회 전반에 뿌리깊게 남아 있다.
겉으로는 누구나 자신의 능력에 따라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표방해 왔지만 지금도 미국 주요 대도시 도심의 흑인 거주 지역은 `범죄의 온상지`로 낙인 찍혀 있다. 3년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남부 일대를 휩쓸었을 때 피해자들은 대부분 흑인 저소득층이었다.
건국과 함께 백인이 구축한 정치계 피라미드의 정점은 항상 백인들의 차지였다. 게다가 대통령을 뽑는 유권자의 흑인 비율은 13%에 불과하다.
오바마가 `흑백 혼혈`이라고 하지만 이같은 미국 사회에서 흑인의 후손이 미국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은 미국의 흑백 인종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다.
오바마는 여기에 상징적인 의미를 더하기 위해 킹 목사가 워싱턴 링컨 기념관 앞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어요(I have a dream)`라는 감동의 연설을 한 지 45주년이 되는 지난 8월28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을 했다.
흑인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미국이 독립선언을 통해 건국한 1776년 이후 232년만이고, 아프리카에서 끌려왔던 흑인들이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을 통해 해방된지 145년만의 일이다.
◇`와습(WASP)` 변화 가능성 `글쎄..`
흑인 대통령의 탄생은 뿌리깊은 인종차별과 흑백갈등을 해소할 것으로 기대돼왔다. 그러나 오바마의 당선을 인종차별의 획기적인 해소로 연결짓기에는 무리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전문가들은 `와습(WASP, 앵글로 색슨계·백인·신교도)`으로 굳어진 미국 사회 기존의 틀이 쉽게 바뀔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검은 케네디` 돌풍이 백인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미국 유권자의 66%는 백인이고, 이들은 오바마의 피부색보다 그의 자질에 주목했다.
특히 미국의 정치 사회에서 흑인의 위상은 초라하기 그지 없다.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흑인은 오바마가 유일하다. 네바다와 인디애나, 콜로라도, 뉴멕시코 등 미국 전체 주(州)의 절반인 25개 주에서는 건국 이래 지금까지 단 한 명의 흑인 의원도 배출하지 못했다. 역대 흑인 주지사는 4명에 그친다.
흑인 여성으로 미국의 첫 국무장관이 된 콘돌리자 라이스는 올해 초 언론 인터뷰에서 "인종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운 이유는 미국을 세운 백인들에게 부여했던 기회를 흑인들에게는 똑같이 제공하지 않은 `태생적 결함(birth defect)`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바마의 열렬한 지지자들조차 오바마의 당선이 미국 사회를 하루 아침에 바꿔놓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과 인종차별 해소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하는 이도 적지 않다.
◇기대 걸맞는 리더십 발휘할까..경험 부족 `아킬레스건`
그렇다면 과연 첫 흑인 대통령 오바마는 국내외에서 받은 인기에 상응하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
`돌풍`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크나큰 기대를 업고 대통령에 당선된 만큼 그의 어깨에 지워진 기대는 남다르다. 게다가 그가 헤쳐나가야 할 과제와 도전은 유례없이 무겁고, 또 어렵다.
우선 미국이 처한 국내외적 상황이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 여파로 미국의 경제는 내년까지 후퇴(recession) 국면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주택가격 추락이 계속되고 있고, 실직자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인해 글로벌 경제마저 위기에 처하면서 국제 사회에서의 미국의 위상도 추락하고 있다. 오바마는 대내적으로 경제를 살리는 동시에 대외적으로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시켜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떠안고 임기를 시작해야만 한다.
심지어 그의 러닝 메이트인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조차 "오바마가 당선된 뒤 6개월 내 위기를 맞을 것"이라며 "각국 지도자들이 그의 리더십을 시험할 것"이라고 말해 홍역을 치루기도 했다.
무엇보다 대선 레이스 내내 끊임없이 그의 발목을 잡았던 `경험 부족`이라는 아킬레스건이 중대한 복병이다. 그는 워싱턴 중앙무대에 진출한지 불과 4년만에 대통령이 됐다. 그만큼 경력이 짧고, 인맥도 제한적이다. 존 매케인은 오바마를 미국 연예인 패리스 힐튼에 빗대 `국정운영 자질은 부족한데 인기만 높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지지자들은 그의 잠재된 능력을 주목하며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해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오바마의 선거운동은 `지도력의 시험대였다`며 그는 종종 휘청이는 모습을 보였던 매케인과 달리 자신의 진영을 탁월하게 이끌었다"고 촌평했다. 이코노미스트지도 "오바마가 경험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실추된 미국의 자신감을 회복시킬 것이라는 점에서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오바마에게 있어 길고 긴 대선 레이스는 연습에 불과했다. 진짜 경기는 지금부터다. 그는 이제부터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해보여야 한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반짝 정치실험에 그치고 말 것인지, 아니면 미국 역사의 진정한 새 장(章)을 열 것인지가 온전히 그의 손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