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한 시민이 써 붙인 글이다. 지난해 10월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되고, 법 시행 1년을 앞두고 있지만, ‘신당역 역무원 살해 사건’으로 허점이 드러났다. 스토킹 행위가 살인 등 중대 범죄까지 이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법과 제도를 보완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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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14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전모(31)씨가 역사 내부를 순찰하던 역무원 A(28)를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전씨는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로 알고 지내던 A씨를 지속적으로 스토킹하고 불법촬영물로 협박한 혐의로 고소당해 재판을 받고 있었다. 전씨는 선고 전날 앙심을 품고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과거 스토킹은 경범죄로 분류돼 1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만 처벌됐다. 그러나 스토킹 범죄가 중대 범죄로 이어지는 등 꾸준히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면서 지난해 10월21일 피해자 보호조치를 강화하고, 가해자를 엄하게 처벌하는 내용(3년 이하 징역 혹은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으로 법이 개정, 시행됐다.
그러나 개정된 법마저도 ‘신당역 역무원 살해 사건’을 막지 못하면서 허점이 드러났다. 전씨는 A씨에게 약 300회에 걸쳐 전화와 메시지를 남기며 스토킹했고, 참다못한 A씨는 전씨를 지난 1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그럼에도, 전씨는 A씨에 합의를 종용하며 연락을 계속 취했다.
피해자 보호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배경에는 법과 제도적 허점이 컸다. 지난해 10월 불법촬영혐의로 A씨로부터 접수한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주거가 일정하고, 도주·증거 인멸 우려가 없다”며 기각했다. 지난 1월 스토킹 혐의로 추가 고소가 접수됐지만, 경찰은 과거 구속 영장이 기각된 배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구속 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피해자 보호 조치도 A씨가 원하지 않아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반복되는 스토킹 범죄 막으려면…‘피해자 보호’ 강화
전씨가 불구속으로 재판받던 중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르면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구속 사유를 더 넓고 적극적인 범위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경찰학회보에 실린 염윤호 부산대 공공정책학부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경찰관 317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2652명(83.6%)이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를 독자적 구속사유로 입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6월까지 스토킹 범죄 총 3412건을 접수해 2887건을 처분했지만, 구속 건수는 125건, 6.2%에 그쳤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보호도 처벌도 불가하다는 점도 스토킹 처벌법의 허점으로 꼽혔다. 경찰은 1차 고소장 접수 당시 A씨를 신변보호 112시스템에 한 달간 등록했지만, A씨가 원하지 않아 잠정조치, 스마트워치 지급 등 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한 달간 유지되던 신변 보호조차 A씨가 연장을 원하지 않아 한 달 만에 종료됐다.
이에 따라 ‘반의사불벌’ 조항을 삭제하고,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반의사불벌’ 조항이 사라지면 전씨가 합의를 요구하며 A씨에게 접근할 일도 없고, 수사기관 등이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반의사불벌 조항 폐지나 구속 수사가 확대되면 수사기관이 의무적,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