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아니다. 지난 2월 미 연방대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를 위법 판결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그날 곧바로 무역법 122조를 발동해 10% 관세를 부과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판결이 나오기도 전인 1월 이미 “대법원이 우리 손을 들어주지 않더라도 1974년 무역법 안에 준비된 장치가 있다”고 예고한 바 있다.
법조계 시선은 곱지 않다. 미국의 한 조세법 전문 블로그(TaxProf Blog)는 338조를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조항”이라 부르며 소송전 가능성을 예고했다. 로이터통신은 통상 전문 변호사 니카타르의 말을 빌려 앞서 트럼프 1기 행정부 실무진도 이미 338조 활용 시나리오를 검토했지만 당시엔 더 익숙한 수단을 택했었다고 전했다. 이번엔 다르다는 의미다. 338조가 낯선 이유는 단순히 오래돼서만이 아니다. 대공황 직후인 1930년 미국은 이 조항을 앞세워 관세 전쟁을 벌였다가 수출이 급감하는 역풍을 맞았고 이후 각국이 관세율을 표준화하는 최혜국대우(MFN) 원칙과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자리 잡았다. 통상법 전문가 존 베로뉴는 미국이 338조를 실제로 동원하면 이 원칙에서 벗어나는 셈이 되어 WTO 본부에 파장을 일으킬 사안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이런 패턴은 처음이 아니다. 1984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마틴 펠드스타인 당시 경제자문위원장을 통해 “122조는 지금 상황에 적용하지 않는다”는 뜻을 의회에 공식 전달한 바 있다. 40여년 전 공화당 행정부 스스로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던 조항을 트럼프 행정부는 지금 다시 꺼내 쓰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정황을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2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새 관세 조치가 법적 공방을 견뎌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법원 판결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우리에겐 다양한 형태의 관세가 있고 우리가 한 일은 ‘A’ 경로가 아닌 ‘B’ 경로를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다른 방법으로 하라’고 한 것이고 우리는 그렇게 했다”고 덧붙였다. 법적 근거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관세를 유지해온 지난 다섯 달의 흐름을 대통령이 직접 ‘전략’이라고 인정한 셈이다.
이번 이슈를 살펴보면서 확인한 사실 하나는 캐나다에 적용된 338조도, 우리나라가 맞은 122조와 301조도, 지난 2월 연방대법원 판결 이후 순서를 기다렸다는 듯 차례로 동원된 카드였다는 점이다. 앞으로 어떤 법 조항이 다음 순서로 나올지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워싱턴은 관세라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경로를 이미 여러 개 마련해뒀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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