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 이후부터 미각이 둔해진 느낌인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바이러스 감염의 여파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체중계에 올라가 체중이 슬금슬금 늘어난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팬데믹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 ‘미각상실’이 주요 증상으로 거론된 바 있다. 당시 의학 전문가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이후 동반된 미각 또는 후각 상실은 신체가 바이러스와 싸우는 방식과 연관이 깊다고 설명했다. 일종의 건강한 면역반응이라는 것. 이런 증상은 완치 후 2~3주 내 회복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코로나에 감염된지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 미각이 둔해진 상황이라면 이비인후과, 신경과 등의 진료를 받는 게 권고된다. 비만클리닉 365mc 조민영 대표원장은 “미각을 둔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비만’”이라고 강조한다. 살이 찐 사람일수록 흔히 ‘미각이 예민해서 음식을 찾는다’고 보는 시선도 있지만, 실상은 반대라는 의미다.
실제 미국 코넬대 로빈 댄도 식품영양학 교수팀의 연구 결과 비만해지면 미뢰수가 감소했다. 그는 쥐 실험 연구 결과 비만한 쥐는 날씬한 쥐에 비해 미뢰가 25%나 적었다고 밝혔다.
미뢰는 혀와 구강에서 단맛, 쓴맛, 짠맛, 신맛, 감칠맛(우마미) 등을 감지하는 미각 세포의 집합체다. 수가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맛이 둔감해진다. 댄도 교수는 이를 비만이 만성적인 경도 염증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 원장은 음식의 맛에 무뎌지는 증상이 다이어트 최대의 적 ‘미각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비만의 양상은 다양하지만, 자극적인 음식에 중독돼 점점 고칼로리 · 고탄수화물 음식을 찾게되는 굴레에 빠져 살이 찌는 유형이다. 이런 음식들은 대개 영양보다 열량만 높다 보니 팔뚝, 복부, 허벅지, 얼굴 등이 통통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각 중독을 일으키는 맛은 대체로 입이 즐거운 맛들을 통칭한다. 달고, 짜고, 기름지고 고소한 맛들은 시상하부의 식욕조절중추를 자극해 쾌락 호르몬 ‘도파민’을 분비하도록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혀의 미각 세포는 기존의 맛보다 강렬한 것을 원하게 되는 등 내성에 빠진다. 뇌는 꾸준히 도파민을 요구하고, 혀가 둔해지면 자연스럽게 설탕·소금·지방질 섭취량이 늘어난다는 게 조 대표원장의 설명이다. 건강한 체중감량의 핵심으로 ‘입맛 교정’이 강조되는 이유다. 그는 처음에는 4주간 음식 관리에 나서는 것을 목표로 삼을 것을 조언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뢰의 평균수명은 열흘 남짓이다. 미뢰 세포는 성숙기가 지나면 죽고 다시 새로운 세포로 대체된다. 미뢰 전체가 새 미뢰로 바뀌는 평균 회전 기간은 약 4주로 알려졌다. 이 기간 동안 기존의 음식에 탐닉하는 게 아닌 건강한 입맛으로 되돌려보도록 노력하자는 것.
조 원장은 “이는 일종의 행동수정요법”이라며 “미각중독은 대뇌피질의 학습경험을 바탕으로 다져지는 만큼, 지속적인 생각의 전환을 통해 스스로에게 건강한 식단의 필요성을 납득시키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다만 혼자서 입맛 교정을 이어가기 힘든 사람은 비만클리닉 등 전문 의료기관을 찾는 게 유리하다. 조민영 대표원장은 “스스로 잡기 어려운 마음을 전문가와 함께 교정해나가면 단순히 살이 빠지는 것뿐 아니라 건강상태까지 개선해나갈 수 있다”며 “입맛을 교정하는 것은 결국 앞으로 비만해질 우려를 줄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조언했다.